후반 포스트시즌 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준플레이오프 2차전. 그러나 그 스토리 가운데 드라마를 쓴 이들은 지난해까지, 심지어 올 시즌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었다.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어 선수로서 한창 전성기를 달려야 할 선수들. 2차전 끝내기타 주인공 김지수(27, 넥센 히어로즈)와 7⅓이닝 1실점 분전투를 펼친 좌완 유희관(27, 두산 베어스)은 절실한 노력을 경기력으로 떨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 9일 목동 넥센-두산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넥센의 연장 10회 3-2 끝내기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날 승리로 넥센은 2연승으로 플레이오프행 티켓에 한 걸음 만을 남겨뒀으며 두산은 2연패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두산도 앞선 두 경기가 완패가 아닌 끝내기 석패였다. 2차전 막판 양 팀의 연이은 수비 실책은 아쉬웠으나 어쨌든 접전 중 접전이었다.
2-2의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2차전 10회말. 1사 1루에서 김지수가 나오자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김지수는 아웃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병살을 막으려면 1루주자 박병호가 빨리 스타트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수는 타석에서 연거푸 파울을 커트하며 힛앤런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개의 견제구가 상황을 바꿔놨다. 두산 투수 오현택이 1루에 던진 견제구가 뒤로 빠지는 사이 박병호는 3루까지 뛰었다. 김지수는 당황한 오현택의 첫 번째 공을 차분하게 받아쳐 우중간으로 날리며 팀의 역대 포스트시즌 첫 이틀 연속 끝내기 승리를 만들어냈다. 다급하게 당겨치기 악수를 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컨택 능력으로 바람직한 밀어치기를 보여준 자체가 빛났다.
유희관은 2차전 두산 선발로 등판해 7⅓이닝 동안 3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5개) 1실점으로 호투했다. 타선이 상대 선발 앤디 밴 헤켄의 호투에 묶이며 점수를 단 한 점도 지원해주지 못해 유희관의 빛나는 호투는 노디시전으로 끝났다. 대타 오재일의 타점이 유희관에게 승리 요건을 주었으나 계투난으로 인해 유희관의 값진 호투는 물거품이 되었다.
팀은 9회 2-1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9회 동점 허용에 이어 결국 연장 10회말 2-3으로 끝내기 패배. 밀리지 않는 투수전을 펼친 유희관의 호투 가치를 높이지 못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분명 잘 던졌다. 사사구 5개를 기록한 것이 옥의 티였으나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코스 분배를 하는 배짱이 돋보였다. 백미는 박병호와의 대결로 유희관은 달아나지 않으며 3타수 무안타로 박병호에게 승리를 거뒀다.
1986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좋은 잠재력을 1군에서 뽐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김지수는 중앙고 시절 청소년대표팀에도 승선했으나 동국대 졸업 후 넥센에 입단한 뒤로는 백업 내야수로 오랫동안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시즌 중반 2루수 요원들이 잇달아 전열 이탈했으나 기회는 김지수가 아닌 LG 이적생인 멀티 플레이어 서동욱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서동욱이 좋은 활약을 펼치며 김지수는 그 이후에도 벤치 신세에 그쳤다. 그러나 끝내기 찬스 마지막 타석 김지수는 어느 코스로 공을 때려내야 하는 지 잘 알고 팀의 작전을 성공시켰다.
유희관도 중앙대 시절 대학리그 최고의 좌완으로 활약하며 2008 베이징올림픽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30km대 중반의 아쉬운 직구 구속으로 1군에서 중용되지 못했다. 성실하게 훈련을 하면서도 그의 마운드는 1군이 아니라 2군이었다. 그러다 올 시즌 들어 비로소 1군에서 기회를 얻기 시작했고 제구력과 배짱투로 계투에서 선발로 스스로 제 기회를 살렸다. 개릿 올슨의 부진과 부상으로 신음하던 두산 투수진에 유희관이 없었다면 포스트시즌 진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들은 1군에서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지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다. 2차전이 끝난 후 김지수는 인터뷰실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다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 앞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현실이 되자 기뻤고 또 그동안의 죄송함이 담겼던 값진 눈물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를 일어서는 김지수에게 당연한 듯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노력을 성과로 잇는 최고의 효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무를 제대한 뒤 유희관은 병역을 해결했다는 홀가분함보다 “이제는 팀에서 절 유망주로 생각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도 못하면 방출이 기다리는 만큼 정말 잘해야 합니다”라며 간절함을 더욱 뜨겁게 담금질했다. 자신의 승리가 연이어지며 팀 25년 만의 10승 국내 좌완이 되고서도 유희관은 “다음에 못하면 결국 나는 반짝 투수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라며 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넥센과 두산은 스타 플레이어를 외부에서 영입하기보다 유망주를 키워 팀 순위를 높인 구단들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을 현실화했고 2차전 영웅 김지수와 분전의 역투를 펼친 유희관은 그 좋은 예가 될 만 하다. 이들은 또다른 유망주들에게 야구에 대한 진지한 마음가짐과 노력이 결국 좋은 열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제대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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