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에 준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된 해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포스트시즌 경기제도의 부분변경으로 준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았던 1995년과 1999년을 제외하면 올해의 준플레이오프는 3, 4위권 팀들의 통산 23번째 가을잔치인 셈.
비록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면 최상위 시리즈인 한국시리즈 무대에까지 나설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최종적으로는 우승까지도 거머쥘 수 있다는 기적 버금가는 가능성에 준플레이오프 참가 팀들의 열의는 언제나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했다.

처음 준플레이오프 제도를 채택했을 당시 준플레이오프 통과 커트라인 승수는 3판 2선승. 이후 2005년에 잠깐 5판 3선승제로 바뀌었다가 이듬해인 2006년 다시 3판 2선승제로 환원 시행되었고, 시행 2년 후인 2008년 정규리그 1, 2위 팀들의 상대적 어드밴티지를 좀더 배려하는 차원에서 5판 3선승제로 낙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늘어난 경기수로 인해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준플레이오프 참가팀들의 출혈은 아무래도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상위 시리즈 팀들과의 싸움이 더욱 버거워지는 양상으로 이어져온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과거 22번의 준플레이오프를 치렀던 3,4위권 팀들의 역대 포스트시즌 생존기는 어디까지 쓰여졌을까?
준플레이오프에서 살아 남는데 성공한 팀들이 플레이오프마저 쓸어 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사례는 모두 9번. 1990년 삼성, 1992년 롯데, 1996년 현대, 1998년 LG, 2001년 두산, 2002년 LG, 2003년 SK, 2006년 한화 그리고 2011년 SK가 각각 험난한 관문을 뚫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바 있다. 확률로 치면 4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준플레이오프를 거친 팀들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이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는 다소 높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숨겨진 원리가 하나 있다.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전력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로 플레이오프를 맞았다는 것이다. 2006년 3판 2선승제에서 KIA를 2승 1패로 누르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위팀 현대마저 3승 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한화(1승 1무 4패로 준우승)를 제외하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관문을 연이어 통과한 팀들 중에서 3판 2선승제이던 5판 3선승제이던 준플레이오프 최종전까지 씨름을 벌였던 팀들은 없었다.
1990년 삼성으로부터 2003년 SK에 이르기까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던 7번 모두 3판 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를 2연승으로 간단히 통과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3승 1패로 KIA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연달아 누볐던 SK 역시 최종전까지 끌고 가지 않았기에 상위권 팀들과의 대결에서 전력상 크게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준플레이오프 장기전의 탈진은 전투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로 이후 상위 시리즈에서 힘을 쓸 수 없었다는 반증이 되겠다.
최근 플레이오프 대진만을 살펴봐도 2009년에서 2012년까지 내리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5차전까지 치러진바 있는데, 3승 2패로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팀들이 하나같이 정규리그 1위 팀에 무릎을 꿇는 결과로 끝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역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 2연승 또는 3연승으로 분위기 좋게 조기에 시리즈를 마감했던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미끄러진 사례는 1994년 한화와 2004년 두산, 2008년 삼성 등, 3차례뿐이다. 한화와 두산은 2연승으로 1차관문을 쉽사리 뚫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3연패와 1승 3패로 시즌을 접었다. 2008년 삼성도 3연승으로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했지만 7전 4선승제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4패로 탈락.
그렇다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연달아 치르고 올라온 팀이 최종 무대에서 정규리그 1위 팀마저 밀어내고 꿈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쟁취한 사례는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역사에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는 딱 2번 기록되어 있다.
1992년 강병철 감독의 정규리그 3위 팀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2연승으로 간단 제압한 후, 플레이오프에서도 해태를 3승 2패로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1위 팀 빙그레를 4승 1패로 꺾고 최종 우승팀으로 등극한 것이 최초이고, 2001년 김인식 감독이 이끌었던 두산(정규리그 3위)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한화와 현대를 2연승, 3승 1패로 밀어내고 한국시리즈에 나가 삼성을 4승 2패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출신 팀 두산의 2001년 대 반란(?)을 끝으로 한국프로야구는 지난해(2012)까지 11년째 정규리그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 권좌에 안착하곤 하는, 법칙 같은 당연한 결말을 매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팀이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현상이 이상할 것은 전혀 없지만, 과거 롯데와 두산처럼 예상을 뒤엎는 이변의 짜릿한 반전 역시 포스트시즌 경기제도가 주는 또 하나의 치명적(?) 매력이라는 점에서 올해도 팬들은 2013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닥뜨린 넥센과 두산의 앞으로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될 것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