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나성범(NC) 이전 대학리그 최고 좌완은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유희관(27, 두산 베어스)이었다. 제구력과 배짱투로 리그를 평정했으나 130km대 초반에 그치는 직구 구속으로 인해 2차지명 6라운드까지 밀려났다. 계약금도 단 3000만원에 연봉도 올 시즌 2600만원의 저가형 유망주. 그 유희관이 팀 25년 만의 국내 좌완 10승을 거두고 신인왕 레이스에 불을 지핀 데 이어 10억원급 호투를 펼쳤다.
유희관은 14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 선발로 나서 7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펼치는 등 7이닝 1피안타(탈삼진 9개, 사사구 1개)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김민성에게 곧바로 안타를 허용한 뒤 변진수로 교체되었다. 변진수가 넥센을 8회 무득점으로 봉쇄한 덕분에 유희관의 최종실점은 0점이 되었다. 두산은 9회말 2사 1,2루서 터진 박병호의 동점 스리런으로 인해 유희관에게 승리를 선물하지 못했으나 연장 13회까지 가는 끝에 8-3으로 승리했다. 노디시전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유희관의 호투는 정말 찬란했다.
사실 유희관은 올 시즌 전만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투수였다. 장충고-중앙대를 거쳐 2009년 두산에 2차 6라운드로 입단한 유희관은 대학 시절 리그 최고의 좌완으로 주목을 받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던 바 있다.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수싸움 능력으로 마운드를 지배했던 좌완 유망주 중 한 명이었으나 최고 구속이 130km 초반에 그쳐 6라운드로 지명되었다. 사실상 신인 지명에서 막차를 탔고 계약금도 3000만원. 2005년 한기주(KIA)가 계약금 10억원 시대를 여는 등 거물급 신예가 많이 배출되던 시대에서 유희관의 계약금은 말 그대로 헐값이었다.

2011~2012년 상무에서 2년 간 좌완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유희관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팀에서도 유희관에 대해 “개막 엔트리에는 들 만 한 투수지만 스피드가 느려서 선발로는 글쎄”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시즌 초반 한 달 만 해도 유희관의 보직은 좌완 계투 추격조 롱릴리프 그 정도였다. 그런데 5월4일 잠실 LG전서 5⅔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깔끔한 선발승으로 거둔 뒤 점차 유희관은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반기를 마칠 때 유희관의 평균자책점은 2.33으로 전체 2위였다. 전반기서 유희관은 외국인 좌완 개릿 올슨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한 공백을 로테이션 소화로 막아냈다. 후반기에는 표적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들쑥날쑥한 등판 주기 등으로 인해 평균자책점이 상승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3.53으로 전체 7위였다. 신인왕 경쟁자 이재학(NC, 2.88), 삼성 에이스 윤성환(3.27)에 이어 국내 투수 전체 3위의 호성적이다. 한 시즌 10승으로 1988년 윤석환 전 투수코치 이후 베어스 프랜차이즈 사상 25년 만의 10승을 달성한 국내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는 가을 야구에서의 쾌투를 알리는 단순한 서막이었다. 9일 2차전서 7⅓이닝 1실점으로 분전하며 넥센 타선을 사로잡았던 유희관은 7회까지 넥센 강타선을 단 하나의 사사구로 묶는 등 노히트노런급 쾌투로 팀의 리버스스윕을 이끌었다. 승리는 거두지 못했으나 5년 전 계약금 3000만원 헐값에 입단한 좌완이 이제는 주축 좌완 선발이 되어 팀의 대계가 으스러질 위기에서 역투를 펼쳤다. 유희관은 준플레이오프 두 경기서 평균자책점 0.63으로 쾌투를 보여줬다.
계약금 3000만원에 입단한 유희관의 연봉은 입단 이래 계속 2000만원대를 맴돌았다. 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공 느린 좌완이었다. 그러나 유희관은 피칭이 단순한 스피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된 제구력과 자신감 가득한 배짱투로 하는 것임을 준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줬다. 유희관의 5차전 호투는 10억원도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숨은 호투의 공. 이는 분명 천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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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