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신인인데 누구는 뛰고 누구는 못 뛰고...’
2013-2014시즌 KB국민카드 프로농구가 지난 12일 개막해 팀당 2~3경기를 치렀다. 새로운 시즌의 재미 중 하나는 대형신인들의 등장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현재 각 구단에 상위지명 된 선수들의 얼굴은 아직 볼 수가 없다. 어찌된 영문일까.
▲ ‘빅4’ 신인들, 볼 수 없는 이유

올해 드래프트서 일명 ‘빅4’로 불렸던 김종규(22), 김민구(22), 두경민(22, 이상 경희대), 박재현(22, 고려대)은 바쁘신 몸이다. 네 선수는 차례로 상위 1~4위를 싹쓸이하며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드래프트 당일 지명구단과 간단하게 상견례를 했을 뿐 아직 소속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지난 9일부터 중국 천진에서 개막된 제 6회 동아시아경기대회에 대표로 뽑혀 소집됐기 때문이다. 대학리그 결승에서 맞상대를 했던 4명은 쉴 틈도 없이 대표팀까지 뛰면서 파김치가 됐다.
그렇다면 다른 신인선수들은 모두 프로에 데뷔했을까? 아니다.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제 94회 전국체육대회가 인천에서 개최된다. 경기대표 경희대(김종규, 김민구, 두경민, 김영현), 서울대표 한양대(이재도, 오창환, 유용진), 경북대표 동국대(임승필, 김동욱, 박래윤), 충남대표 단국대(신재호), 충북대표 건국대(한호빈, 이대혁. 이진혁)가 출전한다. 이에 따라 해당대학 소속의 선수들 총 14명은 프로에서 지명이 되었지만 당분간 데뷔할 수 없다.
문제는 나머지 지명신인들의 경우 이미 프로에 데뷔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모비스가 1라운드 9순위로 지명한 전준범(연세대)과 2라운드 1순위로 지명한 이대성(브리검영대), 대학 3점슛왕 전성현(KGC, 1라운드 7순위)은 이미 프로에 데뷔해 3점슛을 성공시키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경희대 ‘빅3’가 전국체전을 치르는 사이 4순위 박재현은 삼성 팀 훈련에 합류한다. 고려대가 전국체전에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연례행사인 전국체전은 대학들에게 중요한 대회다. 프로농구의 흥행을 위해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선수를 마냥 빼달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전에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던 만큼 KBL이 출전원칙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KBL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KBL의 무능함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전창진 KT 감독은 “KBL이 신인선수 데뷔시기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제시했어야 맞다. 누구는 바로 뛰고 누구는 못뛰는 것이 말이 되느냐? 최부영 감독이 농구대잔치까지 4학년들을 뛰게 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내년에 데뷔시킬 생각인가?”라고 꼬집었다.
KBL은 지난해부터 종전 1월 말에 개최되던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10월로 3개월 앞당겼다. 이 때문에 작년에는 드래프트만 두 번 치렀다. 종전에는 대학의 새 얼굴들이 지명 후 프로코트를 밟는데 약 9개월이 걸렸다. 이제는 공백 없이 프로에서 바로 뛸 수 있다.
하지만 소속과 프로데뷔시기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없어 이와 같은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준용, 문성곤, 이종현 등 현 국가대표 대학생들은 앞으로 이런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 분명하다. 한 프로농구 감독은 “신인들을 전부 2라운드부터 투입한다는 식의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파김치가 된 신인들, 과연 제대로 실력발휘 할까.
선수들의 몸 상태도 걱정거리다. 대학에서 잘하는 선수들일수록 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프로에 온다. 박재현의 경우 대학리그 결승전, 연세대와 정기전, 동아시아 대표팀까지 치르느라 쉴 틈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그는 소속팀에 선배가드들이 많고 전국체전은 뛰지 않고 프로에 온다. 경희대 3총사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한 프로팀 관계자는 “신인들이면 몸이 싱싱해야 하는데 관절염이나 디스크에 걸린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프로에 오면 수술이나 재활치료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에서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체 1순위 김종규를 뽑은 LG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무리한 스케줄로 그의 몸 상태가 걱정되기 때문. 하지만 아직 경희대 신분인 그에게 뭐라고 요구할 수도 없어 눈치만 보고 있다. 김진 감독은 김종규 투입시기에 대해 “고민할 부분이다. 김종규가 동아시아대회에서 귀국하면 전국체전도 출전한다. 1라운드 중후반에 합류할 것이다. 간간히 코칭스태프가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데 걱정이다. 오면 몸 상태를 종합적으로 다시 체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프로구단 관계자는 “좋은 선수가 와도 무리하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농구흥행도 중요하지만 무리하게 선수를 돌리다 다치면 아무 소용없지 않은가”라며 한국농구의 근시안적인 행정을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드래프트서 뽑힌 선수 중 프로데뷔와 동시에 두각을 드러낸 선수는 임동섭, 박경상 정도뿐이었다. 전체 1순위 장재석은 체력고갈이 부상으로 이어져 거의 활약하지 못했다. 무릎상태가 심각했던 김상규는 치료를 받고 플레이오프에서야 두각을 드러냈다. 반면 상대적으로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길었던 1월 드래프트출신 중에는 김시래, 최부경, 최현민, 박래훈, 차바위, 노승준 등이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과 팀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다만 어떻게 하면 신인선수들을 가장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뛰게 할 수 있을지 대학과 KBL, 각 프로구단의 진지한 고민은 분명 필요하다.
jasonseo34@osen.co.kr
경희대 삼총사(위), 연세대출신 신인 전준범(중, KBL 제공), 2012년 10월 드래프트 1순위 장재석(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