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라의 도란도란] 목동구장이 행복했던 10월의 일주일
OSEN 고유라 기자
발행 2013.10.17 06: 07

누가 상상했을까요. 아마추어 야구가 아닌 프로야구가 10월 목동구장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목동구장에 자리잡은 넥센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 후 여섯 번째 시즌 만에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궈냈습니다. 그 동안 콩나물처럼 쑥쑥 커온 자원들과 남모를 눈물 속에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이적생들, 그리고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의 눈물겨온 노력 속에 이룬 단 열매입니다.
지난 7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는 급작스럽게 열렸습니다. 사실 5일 시즌 최종전까지 순위가 정해지지 않아 준플레이오프 1차전 홈구장을 모르던 상황이었습니다. 플레이오프 직행의 가능성이 컸던 넥센도 7일 미디어데이를 피하고 싶었지만 5일 대전 한화전에서 1-2로 패하며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 준플레이오프의 '호스트'가 됐습니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도 가득 안고 넥센의 준플레이오프는 시작됐습니다. 미리 가을 야구를 겪어본 10명 외 4번타자 박병호를 비롯한 17명의 포스트시즌 멤버들, 그리고 담당 3년차에 포스트시즌을 챙기게 된 담당기자, 구장 주출입구의 보안 요원 아가씨까지 모두 처음 맞는 준플레이오프 준비에 바빴습니다.
넥센은 이번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뒤 부랴부랴 가을야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시구자를 선정하고 관중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염 감독은 27명의 엔트리 선수들 모두에게 한방약을 선물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목동에서의 포스트시즌은 처음 치르는 탓에 동선 파악에 바빴습니다.
1,2차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1차전 9회초 수비위치 미스로 동점 적시타를 허용한 이택근은 이날 끝내기 적시타의 주인공이 된 뒤, 팀의 포스트시즌 첫 승리를 즐기기 전에 자신 탓에 지지 않았던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매 이닝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수비'와 '집중'을 서로 외쳐주고 있는 것을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던 탓이겠지요.
2차전 10회말 끝내기를 친 김지수는 그 눈물로도 화제가 됐습니다. 입단 초반 항상 경기장을 찾으셨던 김지수의 부모님은 한동안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자 잘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하필 2차전 당일날 아침 경기를 보러 오고 싶다고 하셨고 이날 경기가 매진이었던 탓에 아들은 표를 구해드리지 못했죠. 당당한 1군 선수로 이날의 주인공이 된 김지수는 그동안의 죄송함을 담아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잠실로 옮겨온 3차전. 연장 14회라는 혈투 끝에 끝내기로 패한 선수단은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습니다. 7회 동점 스리런을 친 김민성에게 다른 선수들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고, 전날 이동일을 맞아 머리를 깎은 넥센 구단 직원은 '이길 때는 변화를 줘서는 안된다'는 징크스에 대한 원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차전까지 방망이가 침묵하며 결국 2승2패로 홈에 돌아왔습니다.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14일 5차전. 패색이 짙던 9회초 마무리 손승락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손승락은 마무리로 전환한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4이닝 동안 64개의 공을 던지며 마운드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9회말 2아웃 박병호의 동점 스리런이 터졌죠. 관중들이 모두 얼싸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넥센 장내 아나운서이자 홍보팀 직원인 김은실 대리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방송을 하느라 13회까지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결국 넥센은 5-8로 5차전을 내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선수들은 모두 덕아웃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첫 가을야구기에 실망도 있었겠지요. 모두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가가 촉촉했습니다. 4번타자로 기대와 압박을 모두 받았던 박병호는 "첫 가을야구가 아쉽게 끝났다. 하지만 배운 게 많았다"고 미련이 담긴 소감을 남겼습니다.
넥센은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느끼며 첫 가을야구 나들이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실패에서 배움을 찾는 것이 진정한 프로일 겁니다. 시즌 후반 고참 선수는 "우리 선수들이 3연패로 지더라도 가을 야구를 겪어보게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겪어보면 왜 한 시즌을 힘들게 치러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는 가을야구. 그 맛을 본 넥센 선수들이 앞으로 얼마나 큰 모습을 보일지 내년이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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