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4차원’ 홍상삼의 천방지축 세이브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10.17 06: 10

“교체 안 되고 박수 받을 때요? 그런 반응 예상했어요. 감독님께서 뭐라고 하셨냐고요? 까 먹었어요”.
두산 베어스 우완 홍상삼(23)은 재미있는 캐릭터를 지녔다. 팀 내 최고의 구위. 그러나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공을 던진다. 풀타임 첫 해인 2009년 선발로 9승을 올리며 맹활약했고 지난해에는 22홀드(3위)를 올리며 강력한 셋업맨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올 시즌에는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꾸준한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때로는 솔직하고 때로는 과감하다. 그 ‘4차원’ 홍상삼은 팀에 귀중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홍상삼은 16일 잠실구장서 벌어진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3-2로 앞선 7회말 선발 노경은의 뒤를 이어 등판해 3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탈삼진 2개, 사사구 1개 무실점으로 노히트 세이브를 거뒀다. 홍상삼이 뒷문을 잘 지켜준 덕택에 두산은 4-2 승리를 거두며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혈전을 치른 피로도를 가뿐한 승리로 씻을 수 있었다.

사실 이날 홍상삼의 세이브는 마치 야구 드라마와 비슷했다. 지난해 셋업맨으로 보여준 활약상과 경기 내용 덕분에 김진욱 감독은 내심 미래의 마무리로 그를 점찍고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서부터 적극 기용했으나 결과는 안 좋았다. 그리고 홍상삼은 지난해 12월 자율훈련 도중 발등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제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도 차질을 빚었다. 투구 밸런스와도 연관된 부위라 홍상삼은 시즌 동안 본연의 좋은 구위를 제구력과 조화시키지 못했다.
결국 이는 올 시즌 55경기 5승4패5세이브9홀드 평균자책점 2.50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다가왔다. 평균자책점 2점대였으나 승계주자 실점률이 50%에 육박, 투구 내용은 아쉬웠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는 고의볼넷을 하다가 스카이 업슛 폭투로 포수 양의지를 고생하게 했고 결국 2차전 동점 실점의 빌미로 이어졌다. 들쑥날쑥한 공으로 인해 팬들을 패닉에 휩싸이게 했던 그 홍상삼이 LG전서는 알토란 세이브를 올렸다.
백미는 7회말 1사 후 윤요섭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을 때. 그 때 홍상삼을 연호하던 이들은 3루측 두산 팬들이 아니라 1루측 LG 팬들이었다. 말 그대로 상대 선수를 조롱한 환호성이었다. 김진욱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홍상삼을 안정시킨 뒤 교체 없이 다시 내려오자 LG 팬들은 박수와 함께 또 홍상삼을 연호했다. 그러나 홍상삼은 올 시즌 LG를 상대로 7경기 평균자책점 1.88에 피안타율 1할6푼3리로 강력했던 투수였다.
LG팬들의 조롱 섞인 응원은 홍상삼에게 진짜 응원과도 같았다. 손주인을 유격수 앞 병살타로 잡았기 때문. 코웃음 같은 병살 유도로 LG 응원석을 고요하게 만든 홍상삼은 결국 경기 끝까지 상대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수훈을 보여줬다. 6이닝 2실점 승리를 거둔 이날 경기 MVP도 노경은은 “사실 상삼이가 MVP가 될 줄 알았다”라며 겸손하게 동료의 공훈을 높였다.
도핑 테스트를 마치고 뒤늦게 인터뷰실에 들어선 홍상삼은 노경은의 환대에 “왜 친한 척 해요”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워낙 절친한 선후배인 만큼 나올 수 있는 장난이다. “저라면 MVP 타이틀을 상삼이 줄 텐데”라는 노경은의 좋은 이야기에 “안 줄 거 잖아요”라며 나쁜 남자의 매력을 발산, 또 한 번 좌중을 뒤집어 놓은 홍상삼이다.
“LG 팬들 응원이요? 소리 들었는데 괜찮았습니다. 교체 안 되고 박수를 받을 때도 그런 반응을 예상했고요. 올해 페넌트레이스 때도 그랬어요. 자극은 별로 안 받았습니다. 롯데의 마처럼 똑같이 재미있게 받아들였어요. 감독님께서 그 때 뭐라고 하셨냐고요? (잠시 생각한 뒤) 까먹었네요”.
컨택 히터들이 많은 LG에 불리할 것 같은데 오히려 잠실구장에서 더 편한 마음가짐으로 던진다고 밝힌 홍상삼. 3이닝을 던진 만큼 이튿날 등판은 위급한 순간이 아닌 이상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홍상삼은 “던지라고 하시면 던져야지요”라며 의연하게 답했다. 부상으로 인해 WBC 대표팀에 낙마했을 때 ‘병역 혜택이 없는 대회라 꾀병을 부리는 것이냐’라는 속 모르는 팬들의 비난에 “군대야 가게 되면 가는 거잖아요. 뭐. 근데 국제대회에서 세계적인 타자와 맞붙고 내 레벨을 보려고 했는데 못해서 아쉽네요”라며 쿨하게 답하던 그 홍상삼이 맞았다.
현재 두산 계투진은 좌완이 없는 데다 150km 이상의 공을 힘껏 뿌릴 수 있는 국내 투수는 홍상삼 밖에 없다. 오현택, 변진수는 사이드암이며 정재훈, 윤명준은 빠르기보다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력이 강점인 투수들이다. 한때 156km까지 던지던 베테랑 김선우의 현재도, 계투로 투입 중인 데릭 핸킨스도 빠른 공을 던지지는 않는다. 파이어볼러라는 강점을 지닌 홍상삼인 만큼 두산 투수진에서는 그가 없어서는 안 된다. ‘내 갈 길 간다’라는 식으로 위력적인 3이닝 세이브를 올린 홍상삼은 이 기세를 그대로 쭉 이어갈 것인가.
farinelli@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