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 ‘자뻑남’이다. 멋대로 사랑에 빠져놓고 상대가 덩달아 좋아해주지 않으면 안달복달한다.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가 있지? 감히?”
그러나 귀족적인 마스크, 거침없는 기품, 후덜덜한 섹시미를 겸비한, 게다가 돈 잘 벌고 잘 쓰는 이 남자들에게 여주인공들은 늘 무심하다. ‘시크릿가든’의 김주원(현빈 분)에게 길라임(하지원 분)이 그랬고, ‘신사의 품격’의 김도진(장동건 분)에게 서이수(김하늘 분)가 그랬다.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기도 전에 여자의 무관심에 상처난 자존심이 분노로 표출되어 화르르 불타올랐다.

이럴 때 시기 적절하게 등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썸남’이다. 남자 주인공의 감정을 극대화 시키는 촉매제 역할인 여자의 짝사랑남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질투심을 유발한다. "쟤는 되고 나는 왜 안돼?"라는 의문을 품으며 질투심에 눈이 멀게 되니, 인물들의 감정선은 초고속 LTE급 진전을 보인다. ‘상속자들’의 김탄(이민호 분)에게도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명 ‘은상앓이’, 이미 중증이다.
16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극본 김은숙, 연출 강신효, 이하 상속자들)'에서 김탄은 차은상(박신혜 분)에게 “어제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 이름이 차은상이다. 그 여자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 혹시 나 너 좋아하냐"며 과감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은상이 "아닐 걸? 약혼했던데?"라고 단정짓자 김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은상은 김탄에게 훈계를 늘어놓으며 약혼녀를 걱정하는 고전적인 리액션 따위는 하지 않았다. 김탄과의 시간이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은상은 미국을 떠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김탄의 진심을 확인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딴청부리며 외면할 뿐이었다.
자신의 고백이 무시당하자 김탄은 당혹스러웠다. 때마침 은상이 애타게 찾던 윤찬영(강민혁 분)이 나타나 함께 떠나려고 하자 은상을 향한 김탄의 감정 그래프가 수직상승했다. “여기 있어. 돈만 빌리면 되잖아”라고 붙잡는 김탄에게 은상은 "여기 있을 이유가 더 없다"며 찬영을 따라나섰다. 자신의 호의를 완강하게 거절하고 돌아서는 은상은 미련조차 없어 보이니, 김탄은 이 관계에서 안달복달해야 하는 엄연한 약자가 됐다.
한편 약혼녀 유라헬(김지원 분)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가 은상을 발견한 김탄은 자신의 품에 안긴 라헬의 존재조차 잊은 듯 "차은상, 거기 서"라고 불러세우면서 이날 방송분이 끝이 났다. 김탄, 은상, 라헬의 아슬아슬한 삼각구도가 흥미롭다. 또한 예고편에서는 가사도우미인 어머니를 따라 김탄의 집에서 살게 된 은상과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한 김탄이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앞으로의 전개에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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