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그리고 여진구. 2013년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여진구의 캐스팅은 한 마디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여진구는 모두가 예상했듯 어린 나이에도 자신을 향한 기대감의 무게에 전혀 눌리지 않은 듯, 보란 듯이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의 개봉 이튿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진구는 “정말 안보여주시더라”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인해 영화를 볼 수 없어 아쉽다고, 나이에 걸맞은 불만(?)을 토로했다.
“내심 기대는 했어요. 인터뷰나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못 본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감독님이 절 부르시고 ‘수고했어 진구야 잠깐만, 이리와 봐’하시면서 몰래 데려가 보여주실 줄 알았어요. 시사회 때 무대 인사가 끝나자마자 저는 바로 대기실에 가 있었어요. 진짜 안 보여주시던데요”

영화 속 여진구가 보여주는 연기는 놀랍다. 액션 연기를 비롯해 진한 감정 연기까지 함께 출연하는 아버지 배우들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보여준 것. 여진구가 괴물 같은 아이 화이를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굉장히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는 느낌, 끝이 안 보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연기를 하며 연구를 할수록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정확한 답이 안 나와서 답답한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신선했어요. 화이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려고 했는데 지금도 사실 영화가 개봉한 뒤지만 제대로 정의를 못하겠어요. 제가 연기를 하고, 풀고 싶은 배역이었어요”
영락없는 배우의 대답이었다.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까지 하는 낯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도전이었다. 장준환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스스로도 많은 준비를 했다. 실제 슛이 들어가고 나서는 마치 빙의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몰입은 함께 연기했던 선배들 덕이었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막상 연기를 하면 몰입이 잘 됐어요. 선배님들과 연기를 하다 보면, 진짜 그런 감정을 느껴본다고 해야 할까요? 순간적으로 욱하는 느낌이 있어요. 나쁜 느낌은 아닌 것 같고 신선하고 소중한 경험인 것 같아요”
그런 몰입 때문일까 여진구는 촬영장에서 촬영이 없을 때 늘 졸음이 오는 묘한 현상을 겪었다.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다섯 명의 아빠들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했다. 대선배인 배우들과 촬영을 한다는 사실이 긴장감을 주는 게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진짜 아빠들처럼 잘 해준 게 고마웠다.
“가장 친했던 아빠는 조진웅 선배님이었고요. 박해준, 김성균 선배님과 현장에서 같이 많이 놀았어요. 석태 아빠(김윤석 분)는 전형적인 한국 아빠 같으세요. 굉장히 무뚝뚝하시지만 귀여운 면도 있으셔서 반전 매력이 있어요. 진성 아빠(장현성 분)는 재치 있고 정말 재미있으시고, 조진웅 선배님은 같이 운동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을 하면서 친근함을 많이 느꼈어요. 성균 아빠와는 서로 장난을 좋아해서 가끔은 괴롭히기도 했고(웃음) 박해준 아빠는 같이 이야기할 거리가 있고 가장 친구 같았던 아빠였어요”
아빠들은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우들이지만, 한참 어린 여진구와 장난을 치며 즐겁게 놀 정도로 개구쟁이들이다. 최근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종이컵으로 진 사람 얼굴에 맞추기 놀이’를 했다며,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여진구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무대인사를 다니고 있는데 이제는 시간 많이 남아서 야구를 보다가 야구도 끝나고 심심하고 시간 좀 남아서 재미나게 시간 때울 놀이 찾다가 박해준 선배님이 생각하신 거예요. 종이컵을 맞는 게 아프진 않지만 굉장히 굴욕적이더라고요. 장현성-김윤석 선배님이 심판을 보시고 나머지 네 명이서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긴장되고”
어린 아들의 19금 영화를 본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어린 시절부터 유명세를 얻은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늘 칭찬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 주는 편이다.
"부모님은 평소에 좀 냉철하게 얘기를 해주시는 편이에요. 이번 영화를 보시고 나서 '못하지는 않았다. 아직 고칠 점이나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해주셨어요. (부모님은) 저에게 많은 분이 칭찬을 해주시면 그냥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너무 막 자신만만해 하지 말라고 그러세요. 그래도 이번에는 혹평을 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현재 여진구는 tvN 시트콤 '감자별 2013QR3'에 출연 중이다. 김병욱 사단에 합류한 소감을 묻자 "김병욱 감독의 팬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불어 '연기 모범생' 답게 새로운 스타일 연기에 대한 관심 역시 놓치지 않았다.

"평상시 시트콤 장르를 굉장히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워낙 좋아했던 장르에다 팬이었던 감독님이랑 작품 할 수 있게 돼서 기뻐요. 게다가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훌륭한 동료 배우 분들과 함께 해서 기쁘고,시트콤은 순간순간 대처 능력이 중요하잖아요, 연기 순발력 높여 보고 싶어서 도전을 해봤어요. 멜로나 무거운 모습 아닌 새로운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을 확실하다. 배우 하정우처럼 극단적인 악역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것. 아역 배우가 아닌 배우 여진구의 행보가 기대감을 모은다.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진짜 답도 없이 나쁜 사람이요. 연쇄 살인범이나 사이코 패스 같은 인간의 악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체험해 보고 싶어요. 내가 어디까지 사악해 질 수 있을까, 나빠질 수 있을까, 궁금해요. 영화에서 하정우 선배님의 연기하는 걸 보고 느껴서는 안될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악역에 대한 로망이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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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