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상황에서 희생번트는 주자의 진루와 아웃카운트 하나를 맞바꾸는 가장 안전한 전술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 이상을 넘어 상대 투수를 괴롭힐 수 있는 무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LG의 번트 작전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며 두산 투수들을 힘들게 한 날이었다.
LG는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선발 레다메스 리즈가 2회 얻은 2점의 점수를 철통같이 지킨 끝에 2-0으로 이겼다. 1차전 2-4 패배를 깨끗하게 되갚은 LG는 2002년 이후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거두고 시리즈 전적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역시 리즈의 호투가 가장 큰 승인이었지만 차분한 번트 작전도 돋보인 경기였다.
김기태 LG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상황에 맞게 전략을 짜겠다”라고 했다. LG는 전날(16일) 열린 1차전에서 번트로 대변되는 안정보다는 비교적 강공 위주로 전술을 짰다. 0-2로 뒤진 1회 무사 1루, 추격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김 감독은 번트보다 강공을 지시했고 이병규(7번)이 동점 2점 홈런으로 단번에 동점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LG는 1차전에서 졌고 2차전에는 결과적으로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주자가 나가기만 하면 최대한 안전하게 진루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전술의 일환이 바로 희생번트였다. LG는 2차전에서 총 5번의 희생번트를 시도해 모두 성공시키며 두산을 압박했다. 여기에 번트를 댈 때도 쉽지 대지 않으며 아웃카운트 하나를 헛되게 하지 않았다. 희생번트만 놓고 보면 최고의 경기라고 할 만 했다.
1회부터 희생번트가 나왔다. 선두 박용택이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김용의가 희생번트를 댔다. 하지만 1·2구 모두 볼을 골라냈다. 번트 모션을 취했지만 공이 빠지자 방망이를 거뒀다. 최대한 까다롭게 공을 주려고 했던 이재우가 오히려 몰리는 상황이 됐다. 김용의는 4구째야 번트를 대 안전하게 투수 앞으로 굴리며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2회에는 손주인이 희생번트를 성공시켰다. 선두 이병규(7번)와 오지환이 연속 볼넷으로 출루하자 손주인 역시 번트 모션을 취했다. 하지만 1회 김용의와 마찬가지로 쉽게 번트를 대지 않았다. 역시 볼 2개를 침착하게 고르며 다시 이재우를 곤경에 빠뜨렸다. 결국 손주인도 3구째에 안전하게 투수 앞 희생번트를 대며 임무를 마쳤다. 이는 이후 윤요섭의 우익수 희생 플라이, 그리고 박용택의 1타점 적시 2루타로 이어지며 이날 결승점의 발판이 됐다.
4회에는 선두 박용택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이번에도 김용의가 상대 투수 핸킨스를 최대한 괴롭힌 뒤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켰다. 역시 빠지는 2개의 공을 골라낸 뒤 3구째에 번트를 댔다. 김용의는 6회 선두 박용택이 2루수 앞 내야안타로 출루하자 다시 투수 앞으로 번트를 대 이날 세 차례나 희생번트를 안전하게 성공시켰다.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으뜸이었다.
8회 무사 1루에서는 윤요섭도 똑같은 방식으로 변진수를 괴롭혔다. 역시 쉽게 번트를 대지 않았고 결국 변진수는 1루 악송구로 주자를 2루에 보내야 했다. 이후 LG는 타석에 서 있던 윤요섭을 아예 현재윤으로 교체해 번트 의사를 확고히 했고 현재윤도 차분하게 공을 내야로 굴리며 2루 주자 손주인을 3루로 보냈다.
6회 김용의를 제외하면 모두 초구에 번트를 대지 않았다. 두산은 쉽게 번트를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LG 타자들이 이를 잘 참아냄에 따라 오히려 두산 배터리가 볼 카운트에 몰렸다. 2B 상황에서 만약 LG 타자들이 다시 공을 골라낼 경우 3B에 몰릴 수 있었다. 결국 3·4구째는 비교적 가운데에 정직한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LG의 번트 성공률을 높이는 하나의 요소가 됐다. 방망이에 공을 맞히기 전에 역시 눈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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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잠실=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잠실=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잠실=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