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재능이 대폭발했다. 타선이 좀처럼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잔루 12개를 남겼지만 득점지원은 2점이면 충분했다.
LG 우완 에이스투수 레다메스 리즈가 한국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포스트시즌 경기서 괴력을 발휘, 팀의 반격을 이끌었다. 리즈는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두산과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 1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철벽을 형성, 2-0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어깨를 지닌 투수가 3년 동안 얼마나 무섭게 성장한지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2011시즌을 앞두고 LG 유니폼을 입은 리즈는 100마일 투수로 야구팬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다. 시범경기부터 리즈를 보기 위해 잠실구장에 팬들이 모여들었고 리즈는 평균 구속 150km 이상을 찍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하지만 강속구 투수 이상은 아니었다. 한국프로야구서 전무후무한 직구를 지니고 있었지만 제구력에 기복을 보이며 리그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완급조절과 수비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이며 좀처럼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입단 첫 해 11승을 거두며 활약했으나 13패를 동시에 안으며 팀의 승리를 보증하는 에이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2년차에는 시련이 찾아왔다. 마무리투수 부재에 시달렸던 팀 사정으로 인해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클로저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러나 리즈는 좀처럼 새 보직에 적응하지 못하며 악몽 같은 시기를 보냈다. 16연속 볼·4타자 연속 볼넷이라는 최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리즈는 3주 만에 선발투수로 돌아왔고 시즌 중반부터 안정세를 찾았다.
‘잠재력’이란 껍질을 깨드리기 시작한 것은 올 시즌부터였다.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된 리즈는 2013시즌 리그 최다 이닝·최다 탈삼진·최저 피안타율을 기록하며 LG의 대반전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한국프로야구 무대 첫 완봉승과 완투승도 달성했다. 물음표가 붙었던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능력, 그리고 수비도 느낌표로 바꿔갔다.
“여전히 나는 어리다. 야구를 처음으로 시작한 게 18살 때였다. 수술한 적도 없다. 어느덧 야구공을 잡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배울 게 많다”던 마음가짐대로 코칭스태프의 주문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팀 동료들과 사이도 원만해 팀원들도 리즈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후배들은 리즈에게 ‘형’이라고 했고, 선배들은 리즈를 동생처럼 챙겼다. 외국인 선수에게 ‘형’ 혹은 ‘동생’이라는 호칭을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구심에게 공을 받을 때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외국인 투수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LG 차명석 투수코치는 이날 경기 전 “리즈에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가장 자신 있는 공으로 승부하라고 했다”며 리즈가 자신의 구위를 믿고 마운드에 오를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리즈는 최고구속 160km의 직구와 슬라이더, 단 두 가지 구종을 집중적으로 구사해 마운드를 지배했다.
이렇게 리즈는 한국야구의 모든 것을 흡수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호투가 가장 절실했던 순간 팀에 반격의 1승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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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