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가락은 리즈와 류제국이 가져간 것 같다.”
LG 포수 윤요섭(31)은 힘없이 축 쳐진 자신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며 초탈한 듯 이야기했다. 수많은 상처와 부상이 자신을 LG의 새로운 안방마님으로 만든 훈장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윤요섭은 올 시즌 LG 포수 중 가장 많은 84경기에 출장, 포수 복귀 2년 만에 주전자리를 꿰찼다.
물론 주전포수 자리가 그냥 떨어지지는 않았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투혼을 발휘해 얻은 결과였다. 시즌 개막 당시만 해도 LG는 베테랑 현재윤을 중심으로 포수진을 운용했다. 반면 윤요섭은 2013시즌이 시작한 후 5일 만에 1군 엔트리서 말소됐다. 현재윤이 부상으로 이탈한 후 5월 3일에나 윤요섭은 1군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윤요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임했다.

무더위의 7, 8월 윤요섭 홀로 LG의 홈플레이트를 지켰다. 현재윤이 또다시 부상을 당했고, 최경철 또한 퓨처스리그 경기서 투수의 공에 맞아 손목을 다쳤다. 포수난으로 인해 윤요섭은 땡볕 더위 속에서 천근만근 포수 장비를 착용한 채 대부분의 경기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자신 또한 부상의 늪에 시달렸다. 특히 파울팁 과정에 왼쪽 엄지손가락의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윤요섭은 내색하지 않았다. 윤요섭은 “다쳤을 당시만 해도 주먹을 제대로 못 쥐었다. 수비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배트를 제대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사실상 포수가 나 한 명밖에 없었다. 타격은 안 되도 투수들이 잘 던지니까 잘 받아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힘들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다. 투수들도 마운드에서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내가 힘든 것은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고 지난여름 최악의 고비를 회상했다.
그리고 LG는 홀로 버틴 윤요섭으로 인해 시즌 막판까지 페넌트레이스를 순항,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윤요섭은 페넌트레이스를 마친 소감으로 “사실 시즌 중간에는 그냥 쓰러질 것도 같았다. 그런데 참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아픈데 신경은 둔해졌다. 부상에서 전혀 완쾌되지 않았는데도 경기 중에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며 “통증은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느껴진다. 특히 자기 전에 통증이 밀려온다. 내 손가락은 아무래도 리즈와 류제국이 가져간 거 같다”고 웃었다.
포스트시즌서도 윤요섭의 활약은 계속됐다. 류제국과 호흡을 맞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윤요섭은 꾸준히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넘나들며 두산 타자들을 속였다. 이를테면,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이동, 바깥쪽으로 빠져 앉지만 실제로 주문한 공은 몸쪽이 되면서 타자들을 멍하게 돌려세웠다. 윤요섭을 이를 두고 “사실 이렇게 하면 평소보다 3배는 힘들다. 그러나 제국이와 이미 계획한 것이다. 모든 투수들을 이런 식으로 리드하지는 않는다. 제국이와는 이렇게 했을 때 결과도 괜찮아서 페넌트레이스 때 했던 것을 그대로 반복했다”고 말했다.
2차전은 더 빛났다. 윤요섭은 2회말 타석에서 희생플라이로 결승타를 쳤고, 수비시에는 선발투수 레다메스 리즈와는 절묘한 호흡을 과시했다. 구위는 최정상급이지만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 컨트롤이 흔들리는 경향을 염두에 뒀다. 동시에 리즈에게 빠른 승부를 주문했다. 리즈는 8이닝 10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으로 최고 투구를 펼쳤다. 1차전 패배후 2차전을 승리,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김기태 감독 또한 “리즈와 더불어 윤요섭이 정말 잘 해줬다”고 칭찬했다.
두산과 플레이오프는 윤요섭에게 있어 첫 번째 포스트시즌이다. 윤요섭은 “긴장되지는 않는다. 준비도 잘 했다”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몸 하나 던져보겠다”던 자신의 각오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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