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요리사의 음식을 일회용 접시에 내온 격이었다.
‘한국리듬체조의 희망’ 손연재(19, 연세대, 서울대표)가 20일 오전 인천대 송도캠퍼스 체육관에서 벌어진 제 94회 전국체전 리듬체조 일반부 개인종합에서 후프(17.750), 볼(17.950), 곤봉(16.850), 리본(17.200)에서 고르게 고득점을 얻어 총점 69.75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가 열린 인천대 송도캠퍼스 체육관은 약 500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협소한 장소였다. 보조체육관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선수들은 경기장 한 쪽에 울타리를 쳐놓고 마지막 연습을 했다.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돼 연습에 몰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평소처럼 리듬체조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경기운영에 큰 문제는 없었을 터. 하지만 손연재가 출전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손연재는 출전만으로 대중과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는 슈퍼스타다. 하지만 전국체전 조직위원회는 스타선수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고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날 손연재를 취재하기 위해 경기장에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방송카메라 인력 등 50명 가까운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렸다. 손연재의 연기는 KBS를 통해 생중계됐다. 그런데 취재를 위한 편의시설은 전혀 없었다. 5석에 불과한 취재석에 많은 기자들이 몰리다보니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포토라인이 없어 사진기자들은 경기장 복도에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통정리에 나선 대회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취재열기에 주최 측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더욱 문제는 취재가 이뤄지는 1층 플로어에 일반인들까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손연재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에 일반인들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방송카메라를 막아서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런데 이를 제지하는 진행요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2층 객석도 문제는 많았다.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만원관중이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진행요원들은 없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은 일반인과 취재진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치르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라기 보단 도떼기시장에 가까웠다.

일반부 경기가 끝난 후 우승자 손연재의 방송인터뷰가 열렸다. 통상적으로 인터뷰를 위해 따로 인터뷰실을 마련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인터뷰는 갑작스럽게 일반인들이 지나가는 경기장 입구 통로에서 진행됐다. 일반인들이 취재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연재를 보기 위해서였다. 손연재는 안전사고 위험을 무릎 쓰고 일반인들 사이를 뚫고 들어와 카메라 앞에 섰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인터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손연재는 “전국체전이 내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치러졌다는 더 좋았을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경기장에서 연기를 했다면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 와중에 손연재는 팬들을 보고 연신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어줬다.
인천아시안게임은 아시아 각국이 모이는 엄연한 국제대회다. 아시안게임 조직위는 올해 전국체전을 아시안게임을 위한 예행연습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대회를 엉망으로 운영한다면 호성적은 고사하고 국제망신을 피할 수 없다. 조직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남은 전국체전 경기와 내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jasonseo34@osen.co.kr
혼잡한 상황에서 진행된 손연재 인터뷰(상), 취재진과 섞여 손연재를 촬영하는 일반팬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