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옳다'와 '그르다'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전북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한판 승부가 확인시켜줬다.
전북과 포항이 기대에 걸맞는 축구를 펼쳤다. 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 전북과 포항은 정규시간 90분이 모자라 연장전 30분까지 모두 소화하는 명대결을 펼쳤다. 심지어 승부차기에서도 양 팀의 골키퍼들은 2만 3477명의 관중을 환호케 만드는 선방쇼를 펼쳐 끊임 없는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내용만 놓고 본다면 많은 이들이 원한다는 패스 축구의 대결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지루한 축구의 대명사가 된 긴 패스 위주의 축구였다.
흔히 현대 축구의 지향점을 바르셀로나로 생각한다. 짧고 정확한 패스 플레이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문전에서도 패스로 확실한 기회를 잡아 승부를 결정짓는 축구 말이다. 오죽하면 '뷰티풀 풋볼(Beautiful Football)'이라 부를까.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포항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포항은 '티키타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축구와 닮은 짧은 패스 플레이 위주의 축구를 펼쳐 '스틸타카'라고 불리며 팬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날 결승전에서 포항의 플레이서 특유의 짧은 패스 플레이는 보기 힘들었다.

포항은 쉽게 짧은 패스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짧은 패스 플레이가 완벽하게 펼쳐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중간에 끊기는 순간부터는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전북의 빠른 침투는 포항이 수비를 재정비하기 전에 흔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날 경기서도 패스가 중간에 끊기면서 역습에 의한 실점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 패스 위주의 공격을 펼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북의 문전까지 단 번에 공격이 진행돼 전북이 빌드업을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북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케빈이라는 제공권 장악 능력이 특출난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케빈의 존재로 전북으로서는 마음껏 긴 패스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북은 포항을 압도하는 공격을 펼치며 19차례의 슈팅을 시도했다. 전북의 계속된 공격 시도와 슈팅에 전북의 홈 팬들은 마음껏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전북도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자신들만의 공격축구를 마음껏 선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포항의 공격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포항은 슈팅이 5차례에 그쳤지만 문전으로 이어지는 공격 시도는 지속적으로 펼쳤다. 특히 전북의 '닥공'을 견뎌내기 위해 움츠렸다가 단 번에 역습으로 나가는 플레이는 관중들이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5차례의 슈팅 중 유효슈팅이 4차례였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북 만큼의 장악 능력은 아니었지만 박성호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도 효과가 있었다. 전반 24분 터진 김승대의 선제골도 박성호의 머리를 거친 슈팅이었다.
경기 내용만 놓고 본다면 흔히 '옳다'는 표현을 하는 축구는 전북의 축구였다. 공격 지향적인 축구, 효과적인 축구, 자신들이 원하는 축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수비적이었던 포항의 축구를 '그르다'고 할 수도 없다. 내용에서는 부족해보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승리의 발판이 된 축구였기 때문이다. 경기 전날 "연정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생각하고 왔다"던 황선홍 포항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적중된 경기였던 것이다.
승리를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공격 축구, 그리고 경기장을 채운 홈팬들을 위한 공격 축구를 펼친 전북의 축구. 승리를 위해 자신들의 것을 버리고 선택한 변칙, 그리고 결국에는 승리라는 결과물을 가져간 포항의 축구 모두 '옳은' 축구라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어떤 이들이 관중을 열광케 한 명대결을 펼친 전북과 포항에 옳고 그름의 여부를 확인하고자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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