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팀 못지않게 뜨거웠던 LG의 2013시즌이 막을 내렸다.
LG는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1-5로 패배,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페넌트레이스보다 못한 경기력으로 허무하게 가을잔치에 마지막을 맞이했기에, 10년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너무 짧고 실망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LG 김기태호의 진격은 이제 막 시작됐다. 2012시즌과 2013시즌 엄청난 도약을 이뤄낸 것처럼, 2014시즌에는 더 높이 올라설 수 있다. 실제로 김기태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을 모두 지켰다. ‘7, 8, 9회가 강한 야구’를 불펜 안정과 경기 후반 뒷심 강화를 통해 달성했다. 올 시즌 불펜 평균자책점 3.40으로 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7회부터 9회까지 타율 2할8푼3리로 2위, 35번의 역전승으로 가장 극적인 팀이 됐다. 마운드, 타격, 수비 같은 굵직한 부분부터 주루플레이, 작전, 견제 같은 작은 부분까지 지난 2년 동안 LG는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이뤘다.

김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으로 LG의 또 다른 고질병이었던 불협화음도 없앴다. 선수들 사이의 갈등, 혹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충돌 같은 것은 한참 지난 일이 됐다. 감독은 베테랑을 믿었고 베테랑은 팀을 위해 솔선수범했다. 신예 선수들은 베테랑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장 이병규(9번)부터 김 감독의 신뢰를 받고 팀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LG 선수들에게 야구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김기태호는 지난 2년 동안 언제나 ‘미래’를 바라봤다. 감독 부임 직후인 2011년 겨울 FA 선수 이탈로 인한 보상선수 3명을 모두 1년차 신예선수(임정우, 윤지웅, 나성용)로 선택했다. 당시 김 감독은 “내가 LG 감독으로 있을 때 성적이 나는 것도 좋지만 그 이후에라도 좋은 선수가 있어야 팀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말한 바 있다. 김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첫 번째 회식자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명석 투수코치는 당시를 회상하며 “감독님께서 ‘우리가 팀을 떠나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을 만들자. 당장 4강만 바라보기 보다는 더 먼 미래를 보는 팀이 되자’고 강조하셨다”고 이야기했다.
성적을 위해 신예 선수들의 군입대 연기시키는 일도 지양했다. 내년과 내후년을 머릿속에 넣어놓고 군입대 선수와 군전역 선수간의 균형을 맞춰 팀 전력을 구상했다. 현재 경찰청에서 전역한 좌투수 윤지웅이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임하고 있는 반면, 임찬규가 오는 12월 경찰청에 입대한다. 2군 선수들의 사기진작 또한 신경 썼다. 2군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있으면 즉시 1군에 올려 곧바로 선발출장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김용의 문선재 임정우 정주현이 1군 선수로 도약했다.
코치들 또한 항상 청사진을 그렸다. 김무관 타격코치는 올 시즌의 성과를 두고 “1년 동안 정의윤 손주인 김용의 문선재 정주현 같은 이들이 우리 팀의 중간층을 형성하게 됐다. 이들은 경기를 통해 꾸준히 향상되는 중이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올 시즌은 딱 생각한 만큼만 좋아졌다. 오는 겨울 할 일이 굉장히 많다”고 스스로 과제를 전했다.
차명석 투수코치는 올해 리그 최강 마운드를 구축했음에도 “한 해 갑자기 성적을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작년에 불펜진을, 올해 선발진을 만들어냈으니 내년에는 토종 에이스투수를 키워보겠다. 마운드가 이 정도는 구축되어야 삼성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고 아직 LG 마운드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자체평가를 내렸다.
수비코치로 2년째를 보낸 유지현 코치는 맹훈련과 데이터 활용으로 LG 수비진의 퍼즐조각을 맞추고 있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에서 오지환 문선재 정주현 김용의 등에게 지옥 훈련을 지도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 타자들에 대한 연구에도 매진했다. 유 코치는 “지환이가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부터 정신적인 면까지 많이 성숙해졌다. 앞으로 지금처럼만 해주면 된다”고 10년을 책임질 LG 유격수의 등장을 알렸다. 수비 전술의 핵심인 시프트를 두고는 “이제는 데이터가 어느 정도 축적됐다. 데이터가 풍부해진 만큼, 수비 시프트가 적중하는 경우도 늘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유 코치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LG 수비력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LG 구단과 김기태 감독의 계약기간은 3년. 코치들의 계약은 매년 갱신되는 구조다. 적어도 2014시즌까지 김기태호는 건재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실제로 2014시즌 후 두산 SK NC KIA 한화가 기존 감독과 계약이 만료된다. 2014년 겨울 초유의 감독·코치 쟁탈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된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에이스투수 류제국 카드를 아꼈다. 벼랑 끝에서 자연스레 최고의 카드를 펼치기 쉽지만, 이번에도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생각했다. 김 감독은 “류제국 스스로는 던질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안 내보낸다. 부상 전력이 있던 선수라 무리하면 안 된다. 스스로 그런 말을 했다는 데에 감사하게 생각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분명 LG는 강해졌다. 그리고 내년에 더 강해질 수 있다. 주장 이병규는 올해 초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우리가 성적을 내면 감독님과 오래 있을 수 있다”고 포스트시즌 진출이 김기태 감독의 재계약을 성사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오는 겨울 LG 구단은 마무리캠프, 외국인선수 선발, FA 계약, 2차 드래프트 등 신경쓸 게 많다. 이에 앞서 할 일은 김기태호의 항해를 서둘러 연장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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