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시즌 상대전적과 가을야구의 상관관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10.22 07: 46

2013 포스트시즌 개막을 앞두고 기록적으로 그 행보와 결과에 가장 많은 관심이 갔던 팀은 사실 넥센이었다. 그 이유는 최하위 팀 한화를 상대로 했던 시즌 최종전의 무기력한 패배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날리긴 했지만, 올 시즌 가을야구 진출 티켓을 따낸 팀들(두산, LG, 삼성)과의 시즌 상대전적에서 하나같이 모두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준플레이오프 상대로 확정된 두산에는 9승 7패, 한국시리즈에 올라있는 삼성에는 8승 7패 1무로 근소한 차이지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하면 만나게 되는 LG에는 무려 11승 5패라는 압도적인 풍모를 보여준 넥센이었기에 그들의 도약이 어디에까지 이를지 무척이나 궁금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그리고 넥센이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을 거푸 이택근과 김지수의 끝내기안타로 장식, 홈 2연승을 쓸어 담는 모습에서 그러한 기록적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지만, 결국 끈질긴 뚝심 하나로 버텨낸 두산에 ‘2연승 후 3연패’라는 악몽과도 같은 역스윕을 당하며 넥센의 야심 찬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프로야구 가을야구사에 5판 3선승제에서 2연승 후 3연패로 분루를 삼켜야 했던 기억은 이번 일을 포함 총 4차례다.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이 현대를 상대로 2연승을 먼저 거두었다가 내리 3연패로 탈락한 것이 최초의 사례로 남아있고, 이후 3차례의 사연을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모두 두산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연관되어 있다.
두산은 2009년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선승을 거두고도 3연패로 물러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지만, 2010년 롯데를 상대로 했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번 경우처럼 반대로 2연패 후 3연승이라는 작은 기적을 일구며 부산팬들을 허망하게 만들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자면 경험이 있어 느낌을 알기에 이번 역스윕도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시즌 상대전적의 우위를 무기로 자신감 있게 나섰던 젊은 넥센의 돌진이 또 한번 두산의 벽에 막히는 모습에서 슬며시 궁금증 하나가 밀려온다. 그것은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를 치르는 팀들간의 시즌 상대전적이 결과를 예측함에 있어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자료일까 하는 문제이다.
이번 2013 플레이오프까지 과거 치러졌던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경기(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의 총 시리즈 수는 83차례. 이 중 시즌 상대전적에서 단 1승이라도 뒤져 있던 팀이 기록의 열세를 딛고 상대를 제압한 경우를 헤아려보니 무려 40차례나 된다. 거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쯤 되면 시즌 상대전적이 앞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경기의 결과를 자신하는 것은 절대 금물인 셈이다.
이러한 수치는 100경기가 넘는 페넌트레이스 경기를 달리는 주법과 단 몇 경기만으로 승패를 가르는 가을야구의 주법이 같을 수 없기에 나타난 결과로 재해석된다. 쉽게 말하면 마라톤 달리기와 100m 달리기의 주법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공수에 보다 많은 선수들에게 출장기회가 돌아가고, 전체 구단과의 경기일정 안에서 선발투수를 비롯한 투수운용 계획을 잡아나갈 수밖에 없는 정규리그의 특성상, 매 경기 베스트 전력을 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때론 욕심 없이 버리는(?) 경기 등이 끼어들어 계산되는 것까지, 시즌 상대전적은 한마디로 변수가 많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은 성격상 경기운용이 전혀 다르다. 가장 믿음이 가는 원투펀치급 선발투수를 중심으로 정예멤버만으로 상대와 반복된 격전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10승 언저리의 고만고만한 투수 몇 명보다 15~20승대의 확실한 특급투수 한 두 명에 의해 승부의 저울추가 기우는 것이 가을야구다.
정규리그 1위 팀을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가치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진정한 강팀을 가리는 일은 포스트시즌 경기를 빌려야 가능하다. 각 팀이 가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원과 극대화 된 최고의 강점을 내세운 가을야구 맞겨룸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운으로만 상대를 이기기 힘든 구조다. 따라서 시즌 상대전적은 아주 압도적인 수치가 아니고서는 그저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시즌 상대전적에서 일방적으로 밀렸으면서도 가을야구에서 업셋, 일명 하위팀의 반란을 대성공으로 완성시켰던 추억 속의 시리즈와 팀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였을까?
역사 속에 가장 인상적인 가을야구의 업셋은 롯데가 독보적으로 여러 차례 주인공으로 등재되어 있다. 롯데는 1984년 최동원을 내세워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4승 3패로 누르고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해 롯데의 삼성을 상대로 한 시즌 상대전적은 7승 13패였다. 한마디로 예상을 뒤엎은 대반전을 이끌어낸 것이다. 전,후기로 시즌이 나위던 시기였지만 롯데의 페넌트레이스 승률 순위는 4위. 그 후 지금까지 4위 팀이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일은 단 한차례도 없다.
또 한번의 대반전은 역시 1992년 롯데가 만들어냈다. 정규리그 3위였던 롯데는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4위 삼성(2승)과 2위 해태(3승 2패) 그리고 1위팀 삼성(4승 1패)을 연달아 물리치고 통산 2번째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데, 이때 상대했던 세 팀과의 시즌 상대전적이 모두 열세인 상황에서 일궈낸 이변 우승이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삼성과 해태에는 각각 7승 11패, 한국시리즈 상대였던 빙그레에는 무려 5승 13패의 일방적 열세를 안고 가을야구에 뛰어들어 만든 혁명적(?) 결과였다.
한편 1999년 드림리그 2위였던 롯데는 매직리그 1위팀 삼성을 상대로 상대전적 6승 1무 11패의 부담을 안고도 플레이오프에서 되레 삼성을 4승 3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또 한번의 혁명을 꿈꿨지만, 이번에는 10승 1무 7패로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한화에 거꾸로 1승 4패로 무릎을 꿇은 아쉬운 기억도 함께 갖고 있다.
여기에 2008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4차례나 롯데가 포스트시즌에서 시즌 상대전적이 앞섰음에도 기록상 업셋을 허용한 사례는 양념 정도가 되겠다.
2008년엔 10승 8패로 앞섰던 삼성에 준플레이오프에서 3연패, 2009년에는 10승 9패로 앞섰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1승 3패, 2010년에는 12승 7패로 역시 좀더 앞서 나갔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2승 3패로 패하며 각각 중도 탈락을 경험했고, 2012년에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상대전적 8승 10패 1무의 열세를 딛고 두산에 설욕, 기분 좋게 10승 9패로 우위에 있던 SK를 상대로 당당히 플레이오프에 나섰지만 2승 3패로 또다시 좌절을 맛보았다.
그밖에도 단일시즌제로 환원한 2001년 이후 눈에 띄는 대반전은 어느 정도 줄어든 양상이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4위팀 LG가 5승 13패 1무의 절대적 열세를 이겨내고 플레이오프에서 KIA를 3승 2패로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것이 유일한 대반전. 그 외의 몇 차례 반전은 수치상 근소한 차라 크게 눈여겨볼 대목은 없어 보인다.
이제 한국프로야구는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만을 남겨놓고 있다. 2001년 두산이 3위팀 자격으로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한화(2승), 2위팀 현대(3승 1패), 1위팀 삼성(4승 2패)을 차례로 누르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이후, 11년째 정규리그 1위팀이 우승트로피를 품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2001년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7승 12패의 열세를 안고 삼성과 붙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번 같은 팀 삼성을 상대로 또 한번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참고로 2013년 삼성과의 상대전적 역시 7승 9패로 한발 뒤져 있다.
조기탈락의 기운을 벗어 던지고 운까지 더해 끝까지 살아남은 두산의 새로운 도전은 과연 어디까지 성공할 것인지. 1986년 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긴 이래 정규리그 4위팀이 우승을 가져간 적은 아직 단 한번도 역사에 없다. 3위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딱 두 번, 1992년 롯데 그리고 2001년 두산에 의해 각각 한 차례씩 기록되었을 뿐이다.
이번 글을 끝으로 2005년 2월부터 400회 가까이 이어온 의 정기적 연재를 마감합니다. 그 동안 보내주신 야구팬들의 관심과 격려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야구기록 또는 규칙적으로 심도 있는 보충설명이 필요한 경우, 비정기적 글을 통해 야구팬 여러분들을 만나 뵐 예정입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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