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스껫볼' 곽정환 PD "CG랑 자막…왜 이리 많냐고?"[인터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3.10.22 08: 27

드라마 '추노'의 곽정환 PD의 컴백작으로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케이블채널 tvN 월화드라마 '빠스껫볼'이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KBS를 떠나 CJ E&M에 새로이 둥지를 마련한 곽 PD의 2년여 만의 작품인 '빠스껫볼'은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기를 배경으로 한 격동의 근대사와 농구를 접목한 드라마다.
이 때문에 지난 21일 첫 방송된 '빠스껫볼'은 여느 드라마들과는 달리 특이한 점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카메라는 초반부터 CG로 재탄생한 당시 경성(서울)의 모습을 이동하듯 훓었고, 다소 생소한 장소와 용어들에 대한 설명은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소개됐다.
tvN 최초로 지상파와 동시간대 경쟁을 선언하며 도전장을 내민 것은 물론이거니와, TV드라마 최초로 방송 전 본편 영상을 IPTV를 통해 유료 DVD 공개하며 자신감을 내비친 '빠스껫볼'의 첫방송이었다. 해당 방송을 본방송으로 시청한 뒤 2회 방송을 편집중인 곽정환 PD와의 인터뷰를 통해 CG 및 자막, 그리고 거기에 담긴 제작진의 숨은 의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막이 굉장히 자주 등장했다. '다큐스럽다'는 평도 보이더라.
"작가들과 각자 당시 시대에 대한 자료를 많이 모았다. 작가들이 쓴 대본에 각주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걸 읽다보니 나조차 새롭고 재밌는 게 많았다.
첫 출발은 '대본의 재미를 어떻게 잘 전달할까'였다. (자막이) 시선을 분산시켜 몰입을 방해하는 측변도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알게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면 결과적으로 감정이입에 더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그런 의도로 어떤 기관이나 장소에 단순한 설명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시대상까지 반영하다 보니 자막이 길어지고 내용도 복잡해졌다."
-'한성별곡' 당시에도 '드라마냐, 다큐냐'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문화 콘텐츠를 잘 만들고 싶다. 드라마가 다른 장르와 혼재돼 뒤섞이더라도, 좋은 콘텐츠가 완성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이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예능프로그램 중에도 자막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복잡한데도, 오히려 자막 때문에 더 재미있다고 칭찬을 받는 프로가 있다. 내 작품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첫회라 더 많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빼려면 뺄수도 있었던 부분을 고민을 여러번 한 끝에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더 풍부하게 담아낸 결과다. 자막으로 내용이나 의미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한다면, 훨씬 더 나은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는 의도에서다. 2부도 지금 편집 중인데, 자막을 많이 넣었다. 그래도 1회보다는 적다.(웃음) 어떻게든 틈틈이 넣어보려 노력 중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 외에 숨은 의미도 있는건가.
"1회에 등장한 '백화점'에 대한 자막의 경우, 그 시대에 이미 오늘날과 똑같은 판촉을 했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자본주의 역사의 시작을 드러냈다. 단순 일본과의 지배-피지배 구조를 벗어나, 이미 당시 대한민국에 자본주의가 정착해 '돈'이라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강제했느냐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코드다. 백화점이라는 단어 하나로, 서민들 삶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지게 이끌어 감정이입을 돕는다. 때문에 백화점에 대한 자막이 필요했다.
좋은 텍스트를 좋은 콘텐츠로 담아내려는 생각은 많다. 순간적으로 지나가 버리는 드라마의 특성상 관객들이 집중해 관람하는 영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전달에 힘든 약점이 있다. 산발적으로 띄엄띄엄 집중도가 떨어지면, 봤는데도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좋은 작품을 만드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의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대중들이 다양한 장르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누군가는 시도를 해야한다."
-'익숙하지 않음'은 자칫 대중의 외면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상업성의 기준보다는 대중성의 측면에서 작품을 만든다. 늘 상업성과 대중성을 구분해서 말하는 데, 상업성이 없더라도 영화 '워낭소리'에 반응하는게 대중성이다. 오히려 굉장히 상업성을 품은 작품을 누르고 의외의 드라마들이 1등을 하는 경우가 작년과 재작년에도 많았다. 좋은 콘텐츠를 찾아보는 분들이 계신다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만들었다. 잘못 전달해 놓고는 '왜 좋은 걸 안보냐'며 혼자 불평불만을 하면 안된다. 그렇지 않기 위해 오늘도 모니터를 하며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자막의 사용도 따지고보면 대중성을 띄기 위해 넣는 거다."
-CG에 대한 기대도 방송 전부터 상당했다.
"오늘(1회)도 엄청 들어갔다. 세트를 지으면 100억~200억이 소요될지도 모르는 문제다. 그걸 CG로 표현해, 난생 처음 보는 그림들을 탄생시켰다. 그 시대의 사진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던 것들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그당시 시대상을 영상으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일 거다.
바스트 중심으로 촬영되는 드라마는 잠깐의 풀샷에서 나온 건물이 어떤 건물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보니 그냥 넘어가고 시청자들도 그렇게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서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한번도 그 시대의 사진을 볼 때 충격적인 비주얼을 이렇게 영상으로 구현한 적이 없었다는 거다. 앞서 '2008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편을 찍으면서, 꼬리 아홉개가 달린 구미호 영상을 최초로 구현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건 창작자의 의무고, 그걸 해석하고 느끼는 분들에게 크고 좋게 다가설 수도 있다."
-1회 CG컷이 367컷이라고 들었다.
"일반적인 한국영화의 경우 2시간에 200컷을 사용한다. 그거에 비하면 드라마 한 회에서 367컷이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하다. 이건 CG만 1년을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도입단계인 장비를 철저히 연구하고, 해당 장비를 한국적으로 사용한 건 세계 최초가 될 것 같다. 앞서 '각시탈'이 비슷한 시대의 모습을 경남 합천의 세트장을 통해 촬영을 진행했지만, 보여졌던 모습은 30년대 후반의 경성이 아닌 대전이나 광주 정도의 도시다.
2부에서는 330컷, 3~4부에서도 200컷이 넘는 CG가 사용된다. 점점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시대상만 보여주고 감정이 빠지면 안된다. 사람들은 감정이입을 위해 드라마를 본다. 서정시를 읽으려는데 서사시만 보여줘봐야 사람들이 싫어할 수 밖에 없다. CG가 많고, 자막이 많다고 자랑거리는 아니다. 다만 그로 인해 그 시대의 인물이 실제로 처했을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그 시대상을 묘사하는게 필요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 더 노력을 쏟은 거다."
-'서사가 아닌 서정시'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빠스껫볼'에도 역사적인 모습 말고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많이 담기나?
"단순 연애 뿐만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치부된다. 내가 사랑할 자격이 있는가, 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능력이 되는가. 이런 것들이 사실 사춘기, 20대 초반, 사회 초년기, 결혼적령기까지 우리를 괴롭힌다. 이런 고민이 사회적인 맥락,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인 맥락과 맞닿아 풍성해진다.
또한 '빠스껫볼'이 실화를 다룬 작품인만큼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농구 대표팀이 농구를 할 때 어떤 고민과 애환을 갖고 있었을까를 고민했다. 요즘 스포츠 선수들도 돈, 라인, 실력 등에 고민이 있다. 그런데 당시는 얼마나 심했겠는가. 그 시점에 갖가지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했겠다 싶었다. 여기에 만화 '슬램덩크'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더해져, 농구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제작을 진행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도, 받아들이는 대중의 입장에서 '복잡하다'고 느끼면 실패한 거라 생각한다. 최대한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이해하기 쉽게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인 만큼 24회가 끝날 때까지 온힘을 다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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