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시청률이라고 불리는 20%를 돌파하며 성공리에 종영한 KBS 월화드라마 '굿 닥터'에는 많은 감초 배우들이 출연한다. 우일규 역으로 분한 윤박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얄밉지만 어딘가 허술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눈도장을 찍었다. 얄미운 역할 답지 않은 훤칠한 외모도 한 몫을 했다.
실제로 만나 본 윤박은 긴장이 잔뜩 묻어나는 신인이라기보다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였다. 단독 인터뷰를 해 본 것은 거의 최초에 가깝다고 털어놓은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더분한 말솜씨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히트 드라마의 일원이 된 소감에 대해 묻자 환한 미소와 함께 "좋은 분들과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답을 내놨다.
"공중파에서 처음 해 본 미니시리즈였어요. 처음으로 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이었죠. 앞으로 더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드라마가 이렇게 잘 될 거라는 건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요. KBS 내부에서도 만장일치로 편성이 통과된 작품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러나 좋은 점이 있다면 아쉬운 점도 있었으리라. 우일규는 악역이긴 하지만 주인공 박시온(주원 분)을 악랄하게 궁지로 몰아넣는 인물은 아니다. 악역과 비 악역 그 중간 어디쯤에 걸쳐진, 어떻게 보면 '어중간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시청자로서의 아쉬움을 이야기하자 윤박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더 악했어야 될 것 같긴 해요. 조금 더 악하고, 어떤 사람을 괴롭히는 데 이유를 찾지 않고 괴롭혀야 했는데(웃음). 처음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 시작할 때 작가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캐릭터 방향을 잡아보자고 하셨죠. 주변 인물들이 워낙에 많다보니 저에게 할당될 내용이 그리 많지는 않을 수밖에 없잖아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좋은 신들이 많은 나올 거라고. 그래도 마지막 후반부에 우일규 이야기가 마무리가 돼서 좋았어요.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나왔잖아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윤박은 극 중 우일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는 훨씬 장난기 많았고 쿨했으며, 때론 능숙했다. 그런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애교가 많은 성격"이라는 기자의 말에 "연기는 평상시 모습과 별개다"라며 그의 연기 지론을 펼치기도 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연기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평상시 제 모습과는 별개인 거죠. 저 웃긴 연기도 자신있어요. 몸개그 같은 건 자기를 조금만 내려놓으면 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웃음)."
이렇듯 발랄한 성격의 보유자 윤박은 어렸을 때부터 엉뚱하고 밝은 아이였다. 원래 그의 꿈은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실 IOC위원장이나 운동선수가 되고팠다.
"처음엔 IOC위원장이 되고 싶었어요(웃음). 조금 크고 나서는 운동선수가 꿈이었죠. 사실 운동 잘 못해요. 아버지가 절 말리신 건 정말 현명한 판단이셨던 것 같아요. 운동을 했으면 이도저도 안 되지 않았을까 해요. 연기에 대한 진로는 제가 정했어요. 중학교 때 예고에 간다고 말씀드렸다가 아버지와 한 3일 정도 싸웠던 기억이 있어요.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울었던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져서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고 2때부터 아버지에게 허락을 맡아 연기 학원에 다녔어요."
또 한 번의 반전.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당시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출전 뿐 아니라 입상까지 했다. 넘치는 끼는 음악의 음자도 모르던 그에게 노래 한 곡을 뚝딱 만들어내게 했다.

"드럼 겸 사람 모집, 주최 역할이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친한 선배가 대학가요제 나갔다가 보러 오라고 해서 갔었는데, 보자마자 이건 대학생만 할 수 있는 것이니 졸업하기 전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음악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같이 해보자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사실 대상을 노렸었죠(웃음). 음악은 밴드 멤버들이 다 같이 만들었어요. 한달 정도 걸렸나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제 긴 여정을 맞게 될 연기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차근차근 자신이 세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연기자였다.
"저는 지금도 제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 특출나다고는 못 느끼죠. 그래도 제가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연기니까 열심히 하려고요. 전 생활연기가 편해요. 장르적인 연기보다 생활적인 연기, 그게 더 편한 것 같아요."
조금 늦은 나이에 빛을 보기 시작한 연기 생활에도 윤박은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연기 생활이란 한 순간에 하늘 높이 뛰어오를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계단과 같았다.
"늦었지만 해결할 건 다 했어요. 군대도 다녀왔거든요. 지금의 인생이 처음 설계한대로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처음엔 사회에 나와 힘들었지만 겪다보니 별로 힘들지도 않아요. 물론 처음엔 데뷔만 하면 큰 역할을 맡고 그럴 줄 알았죠(웃음). 전에는 이병헌 선배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롤모델이 바뀌었어요. 이선균 선배로요. 차근차근, 하나하나 밟아나가고 싶어요.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려고 할 때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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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