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가 MBC 사극 불패신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아쉽게 퇴장했다. 이 드라마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짜릿한 성공기를 다룬 제 2의 ‘대장금’도, 달달한 로맨스를 품은 제 2의 ‘해를 품은 달’도 되지 못했다. 중반 이후 정체성을 잃고 궁궐 내 권력 암투에 집중하는 바람에 이도 저도 아닌 싱거운 사극으로 남았다.
‘불의 여신 정이’가 지난 22일 32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지난 7월 1일 첫 방송 이후 16세기말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과학과 예술의 결합체인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소 분원을 배경으로 사기장 유정의 치열했던 예술혼과 사랑을 그리겠다는 기획의도는 진작에 잃어버렸다.
방송 내내 문근영, 이상윤, 김범, 이광수, 전광렬, 서현진, 박건형 등 출연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낮은 완성도에 묻힌다는 볼멘소리가 즐비할 정도로 드라마는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안방극장이 좋아하는 인간 승리를 내세운 사극이었지만 결과물은 좋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제 2의 ‘대장금’으로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유정(문근영 분)을 둘러싼 두 남자 광해(이상윤 분)와 김태도(김범 분)가 삼각 관계로 얽히면서 ‘해를 품은 달’의 열풍을 이어가지 않을까 기대도 됐다.
하지만 ‘불의 여신 정이’는 결과적으로 ‘대장금’도 아니고, ‘해를 품은 달’도 아닌 정체불명의 사극이었다. 다른 사극과 마찬가지로 권선징악적인 구도에 초점을 맞췄지만 선과 악의 대립이 너무도 싱거웠다. 중반 이후 반복되는 유정의 위기와 극복, 갈등과 봉합이 지루하게 그려졌기 때문. 너무도 쉽게 갈등이 형성되고, 쉽게 풀리며, 다시 반복되는 과정은 애간장을 태우지 못했다.

유정의 사기장으로서 예술혼을 섬세하게 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광해와 태도는 언제나 위기에 빠진 유정을 구해야 했다. 유정은 흔하디흔한 신데렐라가 됐다. 광해와 태도 두 남자와의 사랑을 촘촘하게 담지 못한 것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였다. 드라마는 로맨스가 실종되고, 권력 내 이해할 수 없는 암투만 반복됐다. 이 암투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어 막바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마무리되는 과정은 실소를 유발할 정도로 허점이 많았다.
유정은 사랑스러운 인물이라기보다는 언제나 보호해야 하는 ‘민폐녀’로 그려졌다. 때문에 시대적으로 진일보적인 여성이었던 유정의 예술혼이 극대화돼서 표현되지 못했다. 이는 유정이 사기장으로 성공하는 과정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이유가 됐다. 어느 순간 유정이 주변 인물들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성격이 되고, 유정을 괴롭히는 이강천(전광렬 분)은 명분도 없이 날뛰는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한정 지은 것이 크나큰 패착이었다.
짜릿한 성공기도, 가슴 저미는 달달한 로맨스도 없었던 ‘불의 여신 정이’. 제 2의 ‘대장금’과 ‘해를 품은 달’을 기대하며 방송됐지만, 한때 시청률이 3위까지 떨어지며 굴욕을 겪기도 했다. MBC가 2년여간 이어오던 월화드라마 불패 신화도 ‘불의 여신 정이’가 깼다. 시청률 1위로 출발했던 이 드라마는 제대로 날개도 펴보지 못하고 사극으로서는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한편 ‘불의 여신 정이’ 후속으로는 대원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고려 여인의 사랑과 투쟁을 다룬 50부 대작 ‘기황후’가 오는 28일 오후 10시에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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