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불의 여신’, 그래도 배우는 남았다 [종영②]
OSEN 오민희 기자
발행 2013.10.23 07: 48

‘불의여신 정이’ 답답한 전개와 부진한 시청률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마지막까지 빛났다. 문근영의 애절한 오열 연기는 여전히 돋보였고, 이상윤의 애틋한 순애보 연기는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지난 22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극본 권순규 이서윤, 연출 박성수 정대윤) 결말은 유정(문근영 분)이 일본으로 떠나며 반쪽짜리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가운데 불안한 권력을 잡은 광해(이상윤 분)는 17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정이를 그리워하는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였다.
‘불의여신’은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다룬다는 기획의도로 시작했지만 '시련과 극복'이란 상투적인 전개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특히 여성 최초 사기장 유정이 도자기를 빚는 장면보다 궐내 암투와 복수전의 비중이 높아지며 드라마는 정체성을 잃었다.

이후 제작진은 유정과 이강천의 출생의 비밀을 꺼내들면서 시청률 끌어올리기에 주력했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반성 없는 이강천의 뻔뻔한 태도는 유정을 더욱 안쓰럽게 만들며 기획의도에서 멀어졌다.
여기에 역사와 달리 김태도(김범 분)가 갑자기 사망하는 장면은 극의 완성도와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리며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정이 때문에 발발한 듯 한 임진왜란이 정이의 일본행으로 마무리되는 듯 한 억지스러운 결말 역시 부진한 시청률을 자초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작품의 완성도에도 문근영과 이상윤을 비롯한 배우의 열연은 빛났다. 문근영은 조선 최고의 사기장인 '유을담'(이종원 분)의 양녀이자 도자기를 만드는 데에 타고난 능력을 가진 유정 역을 맡아, 온갖 암투에도 최초의 여성 사기장으로 성장하는 당찬 모습을 보여줬다. 문근영은 철두철미한 모습으로 복수를 되갚는 냉정한 모습을 연기하면서도,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에는 가슴 절절한 오열연기로 안방극장을 울렸다. 그야말로 문근영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이상윤과 김범은 문근영의 조력자로 애틋한 순애보를 연기해 여심을 흔들었다. 이상윤이 맡은 역할은 광해군으로 총명함과 따스함을 두루 갖춘 군주로서 문화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만큼 여주인공인 문근영과 애틋한 기류를 형성했다. 왕자의 신분에도 사랑 앞에 적극적인 이상윤의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김범은 그림자처럼 유정의 곁을 지키며 연모의 정을 키워가며 순애보 김태도를 연기, 처음으로 도전한 사극 연기에도 안정된 무술연기와 애달픈 짝사랑을 연기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런가하면 이광수는 예능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즐거움을 선사했다. 극 중 품행이 거칠고 잔꾀에 능한 비열한 왕자 임해군 역을 맡은 이광수는 간사한 말투와 비열한 표정을 설정, 물오른 악역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일조하며 신스틸러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처럼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불의 여신 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는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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