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옛 사제지간이 드디어 외나무다리서 원수로 만난다.
부산 KT와 인천 전자랜드가 23일 오후 7시 부산사직체육관에서 시즌 첫 대결을 앞두고 있다. 전자랜드 외국선수 찰스 로드(28, 전자랜드)는 2년 전만 해도 부산 KT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로드는 폭발적인 탄력에서 나오는 화끈한 덩크슛과 블록슛으로 팬들을 몰고 다녔다. 로드는 2011-2012시즌 평균 20.3점, 11.5리바운드, 2.6블록슛의 화려한 기록을 냈다.
하지만 로드는 코트 안에서 전창진 감독과 늘 충돌했다. 감독의 지시사항을 한 귀로 듣고 흘린 것이 문제였다. 기분파인 로드는 알았다고 하고는 돌아서서 3점슛까지 던졌다. 전 감독은 경기 중 로드를 혼내고 달래기도 했다. 경기가 기울어져도 일부러 로드를 출전시키지 않기도 했다. 로드는 애꿎은 자전거를 타면서 화를 삭혔다. 하지만 끝내 ‘통제불능’인 로드는 시즌 중 퇴출대상이 됐다.

그런데 시즌 초반 퇴출된다던 로드는 결국 플레이오프 4강전까지 뛰었다. 전창진 감독은 "대체선수를 구하지 못했다. 로드의 퇴출에는 변함이 없다. 난 한 번 말하면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자랜드와의 6강전 로드는 26.8점, 14.6리바운드, 2.4블록슛으로 펄펄 날았다. 특히 5차전 4쿼터 종료직전 터진 로드의 팁인슛이 아니었다면 KT는 그대로 탈락이었다. 로드는 2차 연장전서만 7점을 넣는 등 29점, 22리바운드, 3블록슛, 덩크슛 네 방의 환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시즌 뒤 로드는 스페인 1부 리그 사라고사에 입단했다. 이후 KT는 대리언 타운스, 브라이언 데이비스 등을 영입했지만 로드만한 선수가 없었다. 올해도 KT는 골밑을 지켜줄 외국선수가 없어 고생하고 있다. 그 와중에 로드는 지난 7월 외국선수 트라이아웃서 1라운드 6순위로 전자랜드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시즌 중 기자와 만난 로드는 전창진 감독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전창진 감독과 다시 만나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KT와의 첫 경기를 벼르고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창진 감독은 요즘도 로드 이야기만 나오면 학을 뗀다. 그만큼 함께 지낼 때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전 감독은 “로드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현재 로드는 비시즌 운동량이 많지 않아 체력이 떨어지는 상태다. 수술을 받은 무릎은 큰 문제가 없는 상황. 탄력보다 체력이 관건이다. 로드는 평균 15분 31초를 뛰면서 9.8점, 5.3리바운드, 2.0블록슛을 기록 중이다. 출장시간에 비해 괜찮은 골밑 장악력이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로드의 경우 1라운드 중후반은 돼야 몸이 올라올 것이다. 그래도 로드가 골밑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선수이기에 주태수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며 신뢰를 보이고 있다. 로드와 전창진 감독은 무려 579일 만에 적으로 만난다. 과연 로드와 전창진 감독은 해묵은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누가 웃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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