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을 통해 팀이 완성되고 있는 건가.
불안했던 두산 불펜이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되고 있다.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1, 2차전까지만 해도 끝내기 안타를 맞고 무너졌던 두산 뒷문이 두터워지는 중이다. 여전히 확실한 마무리투수 한 명을 꼽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펜진을 계획적으로 폭넓게 가동, 특정 투수 몇 명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우승에 다가가고 있다.
누가 봐도 두산에 붙은 가장 큰 물음표는 불펜이었다. 2013시즌 불펜 평균자책점 4.28로 이 부문 5위, 블론세이브 17개로 최다 공동 3위에 자리할 만큼 페넌트레이스 내내 뒷문이 불안했다. 다른 팀에 한 명 정도는 있는 좌완 불펜 요원도 마땅치가 않아서, 불펜진 가동에 박자를 맞추는 데 애를 먹곤 했다. 오현택 홍상삼 윤명준 정재훈이 세이브 28개를 합작했지만, 이들 중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시기 별로 마무리투수 자리에 이름을 올려놓은 투수는 있었으나, 2013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두산은 집단 마무리 체제였다.

집단 마무리 체제는 마무리투수 부재와도 같은 말이다. 마지막 순간, 승리를 지켜줄 확실한 한 명이 없기 때문에 매 경기 불펜 투수들의 컨디션과 상대 타자와의 상대성을 체크해야 한다. 불펜진 등판 루틴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다수의 불펜투수가 공멸하는 경우가 많다. 오승환이 있기에 삼성이 강하고, 정대현이 있어서 SK가 강했다. 과거 해태와 현대 또한 각각 선동렬과 조용준이 마지막 순간 벽을 만들고 있었기에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두산은 준플레이오프 3차전부터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신예투수 변진수와 윤명준이 도약한 것을 시작으로 데릭 핸킨스가 5⅔이닝 동안 1점도 내주지 않고 있다.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까지 불펜 등판을 자처해 준플레이오프 4차전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불안했던 홍상삼은 준플레이오프 5차전 연장 11회에 마운드에 올라 무실점하더니, LG와 플레이오프 1차전서 3이닝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세이브까지 달성했다. 그러면서 두산 불펜진은 포스트시즌서 정규시즌 때보다 약 2.5점이 낮은 평균자책점 1.75를 기록 중이다.
물론 우연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단 포스트시즌에서 노경은 유희관 니퍼트 10승 선발투수 셋이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조기 강판 없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닝을 소화했고, 때문에 두산은 불펜진 조기가동을 최소화한 채 포스트시즌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두산이 5회 이전에 선발투수를 바꾼 경우는 LG와 플레이오프 2차전이 유일했다.
지난 2년 동안 투수진 혹사를 원천봉쇄한 김진욱 감독의 마운드 운용도 빛났다. 김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3차전부터 그 어느 투수도 연투시키지 않았다. 윤명준과 변진수를 한 조로 묶고 홍상삼과 핸킨스는 전날 등판하지 않은 경우에 한 해 롱맨으로 기용했다. 오현택과 정재훈은 상황에 맞춰 등판시켰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두산은 변진수 정재훈 윤명준 오현택의 순서로 2⅔이닝을 막았다. 이로써 한국시리즈 2차전에는 각각 4일과 5일을 쉰 핸킨스와 홍상삼을 준비시킬 수 있게 됐다. 계획적인 불펜 운용으로 불펜 투수 중 구위하락을 겪고 있는 투수는 한 명도 없다. 포스트시즌서 2위 이하 팀이 한국시리즈 1차전서 1위 팀을 이기지 못했던 원인을 폭넓은 불펜 운용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시리즈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삼성 타자들은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20일이 넘게 제대로 된 실전을 치르지 못했다. 배트 타이밍이 평소보다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두산 불펜의 진정한 시험무대는 한국시리즈 2차전부터가 될 수 있다.
만일 두산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두산은 21세기 최초로 15세이브 투수 없이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된다. 두산은 2001시즌에는 선발 10승 투수 없이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팀이 됐었다. 그리고 1992년 롯데와 더불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승리한 유이한 역사를 기록했었다. 두산이 2013년에 장식할 또 다른 기적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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