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낯익은 ‘상속자들’, ‘꽃남’-‘가십걸’이 떠오른다고?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3.10.25 07: 18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설정이다. 최고 상류층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 고등학교, 그 중에서도 최고 부자인 남자 주인공,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가난뱅이 여자 주인공.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한번쯤은 떠오를 법한 익숙한 설정이다.
더 나아가 상류층 아이들의 이야기와 어른들 못지않게 치밀한 그들만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다르다. 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극본 김은숙 연출 강신효)은 비슷한 설정에도 김은숙 작가 특유의 개성 있고 디테일한 캐릭터들, 밀도 있는 전개로 회가 거듭될수록 신선한 재미를 주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4일 방송된 ‘상속자들’에서는 교복 값만도 100만원이 넘는 제국고에 들어가 경영 상속집단, 주식 상속집단, 명예 상속집단, 불가촉천민(?) 집단인 사회배려자 전형 입학자 등 재산과 지위로 나뉘는 제국고의 카스트 제도를 듣고 충격과 고민에 빠지는 차은상(박신혜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차은상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김탄(이민호 분), 그런 김탄을 자극하기 위해 차은상에게 적극적인 호기심을 보이는 최영도(김우빈 분)의 치열한 기 싸움 역시 시작됐다.
설정만으로 보면 또 캔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 부잣집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차은상이 제국고에 입성한 이유는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캐릭터 자체도 굉장히 독립적이고 현실적이다. 또 최영도가 김탄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이유도, 그런 김탄이 조용히 지내는 것도 그간 방송분에서 충분히 짐작할 만한 상황들이 비춰졌기에 흥미를 더 유발한다.
예를 들어 차은상이 제국고에 입학한 것은 김탄의 아빠 김남윤(정동환 분) 회장 때문이다. 뒷조사를 통해 아들 김탄과 차은상이 미국에서 함께 있었던 사진을 보게 된 김남윤 회장은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의 집 메이드룸에 사는 차은상을 불러 유학까지 운운하며 제국고 전학을 권유했다. 너무나 다른 처지를 직접 통감하라는 은밀한 계산이 깔려있는 제안이었다.
차은상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유학이야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에도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 유학을 가는 것은 1회 때부터 그려진 차은상의 꿈이었다. 실제 미국에 가서 김탄을 만나게 된 계기도 언니 핑계로 미국에 어떻게든 눌러 앉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차은상에게 김남윤은 후원을 해주겠다며, 유학이야기까지 꺼냈다. 차은상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는 나쁜 놈처럼만 보이는 최영도에게도 얼핏 연민과 이해를 할만한 구석이 보인다. 최영도는 말이 안 통하는 호텔 체인 대표인 아버지 최동욱(최진호 분)과 8살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상처가 있는 인물. 그간 아버지와 놀아난 여자들에 대해서도 개를 시켜 물게 할만큼(?)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김탄을 천적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김탄이 서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버지의 여자 문제로 상처가 있는 최영도가 김탄에게 배신을 느낄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최영도가 차은상에게 갖는 관심은 아직까지 짓궃은 호기심에 불과하다. 이날 그는 "너 오늘부터 내 꺼다. 다르게는 셔틀이라고도 부른다"라고 적극적인 관심을 표했지만, 이는 아직 이성적인 고백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 또 그는 그런 짓궃은 관심을 입증하듯 차은상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치킨집에서 배달을 시켜, 졸부라고 알려진 차은상의 실체를 거론하며 그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상속자들'은 전형적인 드라마식의 판타지 설정 속에서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전혀 낯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명품은 디테일의 차이라 했나. 이 말이 맞다면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촘촘한 인물들의 동기 부여와 캐릭터 설정을 통해 명품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김은숙 작가의 필력을 칭찬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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