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원주 동부가 최강진용을 갖추고도 활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동부는 25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2013-2014시즌 KB국민카드 프로농구 1라운드서 부산 KT를 맞아 74-94로 완패를 당했다. 개막 후 3연승으로 치고 나갔던 동부는 같은 날 전자랜드에 덜미를 잡힌 모비스, LG(이상 4승 2패)와 함께 공동 3위로 내려앉았다.
지난 22일 삼성전 종료직전 끝내기 골밑슛을 넣은 김주성은 왼쪽무릎 타박상으로 결장했다. 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은 수준이다. 이충희 감독은 김주성을 KT전 선수명단에서 배제하고 경기를 치렀다. 김주성이 빠진 상황에서 나머지 선수들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부는 허버트 힐과 이승준이 선발로 섰다. 김주성이 빠진 골밑에서 이승준은 골밑수비와 리바운드에 좀 더 신경을 써줘야 한다. 이승준은 1쿼터 8점을 올리며 선전했다. 하지만 3점슛 두 방과 자유투에 의한 득점이었을 뿐 골밑득점은 없었다. 허버트 힐은 전반전 단 한 차례의 슈팅시도도 없었다. 김주성과 호흡을 맞췄을 때 기복 없이 안정적인 득점을 보여주던 힐이다. 하지만 이승준과 뛸 때 장점이 발휘되지 않았다.
KT의 앤서니 리처드슨은 3쿼터 11점 포함, 29점을 폭발시켰다. 이충희 감독은 KT의 스몰라인업에 대응하기 위해 후반전 키스 렌들맨을 중용했다. 순발력이 좋은 렌들맨과 이승준이 함께 뛰면서 기동력이 살아났다. 이승준은 21점을 올렸다. 그 중 3점슛이 5개였고 2점슛은 단 하나였다. 렌들맨은 후반에만 11점을 올렸다.
동부는 강점인 리바운드와 높이서 전혀 이점을 취하지 못했다. 이날 동부는 리바운드서 21-29로 밀렸다. 5개를 잡은 이승준을 제외하면 4개 이상 잡은 선수가 없었다. 11분 38초를 뛴 힐은 득점 없이 리바운드 2개만 기록했다. 동부는 상대팀 화력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최대장점을 포기한 셈이 됐다.

동부는 개막 후 5경기서 허버트 힐-김주성-이승준을 동시에 선발로 세웠다. 이 기간 동안 힐(20.4점, 8.8리바운드)과 김주성(17.6점, 4.4리바운드)은 38점, 13.2리바운드, 2.2블록슛을 합작하며 KBL최강의 골밑을 구축했다.
문제는 이승준이 단순한 장신슈터로 역할이 축소됐다는 점. 이승준의 3점슛은 44.4%로 전문슈터와 비교해도 손색 없다. 다만 뛰어난 운동능력을 살려 속공에 적극 참여하는 특유의 장점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국가대표팀과 동부에서 이승준의 활약상이 판이하게 다른 것은 활용법 때문이다. 이승준이 3번을 보면 외곽수비도 문제가 된다. 동부는 평균 79.3점을 득점하고 78.5점을 내주고 있다. 상대 숨통을 조이는 동부특유의 질식수비는 실종됐다.
삼성전 후 김주성은 “아무래도 장신 세 명이 동시에 뛰다보니 뻑뻑한 감이 없지 않다. 이승준과 힐의 장점을 찾아서 맞춰야 한다. 지금 줄만큼 주고 농구를 하고 있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김주성이 부상에서 돌아오면 이승준은 다시 애매한 옷을 입어야 한다. 시즌은 길다. 35세의 김주성이 매 경기 풀타임을 소화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김주성이 다쳤을 때 힐과 이승준이 대역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몰라 헤맨다면 동부는 상위권 도약을 장담하기 어렵다.
동부는 5라운드에 최고의 스몰포워드 윤호영이 상무에서 돌아온다. 그 때 중복포지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하프코트 오펜스에 장점이 있는 힐과 속공에 능한 렌들맨의 역할과 조합도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줘야 한다. 남들은 한 명만 있었으면 하는 빅맨을 동부는 4명이나 데리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색깔이 없어 장점이 단점이 되고 있다. 이충희 감독의 고심이 더 깊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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