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정신의 육체 지배, 기적 향한 두산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10.26 07: 27

“우리 선수들이 정말 힘든 와중에서도 근성을 발휘 중이다. 덕아웃에 맥이 빠진 듯 앉아 있다가도 자신이 나갈 차례가 되면 힘을 내고 정말 잘 뛰어주니 어떻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준플레이오프 2연패까지만 하더라도 연이은 끝내기 패배로 인해 지독한 체력 소모, 그리고 상실감으로 인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외관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절박한 순간 근성을 불태웠다. 누가 봐도 힘든 시점에서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지금은 디펜딩 챔프를 자신들의 손으로 벼랑 가까이 몰아붙이고 있다. 2013 포스트시즌 언더독 두산 베어스가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목표에 반환점까지 도달했다.
두산은 2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5시간 32분에 이르는 역대 최장시간 연장 혈투를 벌인 끝에 13회초 오재일의 결승 솔로포 등에 힘입어 5-1로 승리했다. 이로써 두산은 적지 대구에서 전날 완승(24일 7-2)에 이어 파죽의 2연승에 성공했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페넌트레이스 4위 두산의 포스트시즌 여정은 험난했다. 3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첫 두 경기를 모두 내줬다. 그것도 3-4, 2-3 한 점 차 끝내기 패배. 2차전은 연장 10회말 끝난 경기라 선수들의 피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을잔치 첫 두 경기서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선수단 버스를 향하던 두산이다.
그런데 이 팀이 반등에 성공한 것은 11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 연장 14회 4-3 끝내기 승리부터였다. 변진수와 윤명준 두 명의 계투 요원은 각각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어떻게든 버텨냈고 이원석의 끝내기타가 터지며 두산은 필요했던 1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 1승은 체면치레가 아니라 가파른 상승세의 시작이었다. 4차전 2-1, 5차전 8-5로 넥센을 꺾으며 LG와의 플레이오프 무대로 진출한 두산은 2차전서 레다메스 리즈에게 8이닝 무실점으로 묶인 것을 제외하고는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주며 3승1패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두산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야구 역사 상 페넌트레이스 4위가 한국시리즈 제패에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데다 두산은 체력 소모가 큰 편이었다. 그나마 LG와의 플레이오프를 4차전에서 끝낸 것이 사흘 휴식을 제공했으나 객관적 전력에서 삼성에 열세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음에도 두산의 이미지는 그저 ‘언더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팀이 상대 막강 마무리 오승환까지 무너뜨리며 적지에서 2연승을 거뒀다. 1차전서 선발 노경은의 호투와 손시헌-김현수-이원석 등의 적절한 장타에 힘입어 7-2로 승리한 두산은 2차전서 선발 더스틴 니퍼트의 6이닝 무실점 승리 요건을 계투 홍상삼이 블론세이브로 그르쳤음에도 악착같이 삼성을 괴롭힌 끝에 13회 오재일의 솔로포를 시작으로 대거 4점을 집중시키며 5-1로 승리했다.
특히 2차전은 선취점 후 동점 허용으로 인해 자칫 기운 빠질 수 있었음에도 데릭 핸킨스-윤명준-정재훈의 버티기에 이어 마지막 1이닝을 맏형 김선우가 막아내며 승리했다. 점수는 5-1이지만 경기 내용은 말 그대로 혈투였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선수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수진이 상대적으로 두껍다는 장점을 갖췄으나 엔트리 변동이 거의 없이 경기를 운용했음을 감안하면 소모도는 역시나 크다.
그런데 두산은 고비마다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김진욱 감독은 선수들이 계속 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뛰면서 체력 소모와 피로 누적이 대단할 텐데 자기 기회가 오면 어떻게든 나가서 팀을 이기게 하고자 한다. 고맙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라며 감격했다.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맥이 빠져 추욱 늘어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경기가 다가오면 선수들이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쥐어짜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만큼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선수들의 유무형적인 투지가 피로에 지친 몸을 지탱하고 또 달리게 한다. 톱타자 이종욱은 2차전 상대 선발 릭 밴덴헐크의 148km 직구에 왼 무릎 측면을 직격당하고도 일어나 출루한 뒤 뜬공 타구에 거침없이 태그업하는 근성을 발휘했다.
교체 투입된 김재호는 2루 도루를 성공시키며 몸을 날린 슬라이딩으로 자칫 목에 부상을 입을 뻔 했으며 포수 최재훈은 연일 마스크를 쓰는 피로를 기본으로 9회 손시헌의 번트 실패 때 2루에서 포스아웃당하며 유격수 정현과 충돌해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다. 꽤 통증이 심해보였으나 그러고도 공수교대가 되자 다시 마스크를 쓰고 경기 끝까지 계투진의 버티기 호투를 이끌었다.
현재 두산의 모습은 2009년 선수들의 줄부상에도 한국시리즈를 7차전까지 몰고 간 SK 그 이상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4년 전 SK는 좌완 에이스 김광현, 포수 박경완 등 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들의 부상 결장에도 불구, 두산을 3승2패로 꺾은 뒤 KIA와 한국시리즈 최종전까지 가는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현재 두산은 4년 전 SK보다 더욱 쉽지 않은 험로에서 버텨가고 있다. 선수들이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들을 안고 뛰며 정신력을 발휘 중인 두산. 지금의 두산은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이 지친 몸을 부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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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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