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도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한국무대가 좁다는 듯 한단계 위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면서 메이저리그 성공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삼성 오승환(31)은 25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 등판, 4이닝을 소화하며 1피안타(1피홈런) 8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6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 처리하며 한국시리즈 이 부문 타이기록을 불펜투수로서 달성했고, 데뷔 후 가장 많은 4이닝을 던진 가운데 안타는 딱 1개 맞았지만 그게 결승홈런이 되고 말았다.
연장 13회 오재일에게 허용한 홈런은 삼성에 비극이 됐지만 그 누구도 오승환을 탓할 수 없다. 1이닝 전문 마무리투수인 오승환은 무려 4이닝을 던졌는데 이는 신인 시절인 2005년 7월 2일 현대전(4이닝 6K 무실점) 이후 무려 7년만에 최다이닝 투구 타이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삼성의 확고부동한 마무리로 자리잡은 이후에는 3이닝 이상 던지는 일도 드물었다.

오히려 오재일에게 맞은 홈런에 앞서 보여준 12명의 타자와의 승부는 왜 오승환에 대해 메이저리그가 영입의사를 갖고 있는지 확인시켜줬다. 이날 오승환의 투구수는 53개, 직구 44개와 슬라이더 9개였다. 직구 최고구속은 151km를 기록했고 슬라이더는 145km까지 찍었다. 시즌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오승환의 구위와 제구가 4이닝을 던지면서까지 유지가 됐다는 점이다. 비록 실투 하나가 홈런으로 이어졌지만, 그 전까지 오승환의 공을 두산 타자들은 제대로 치지도 못했다. 53개의 공을 상대하면서 배트에 공이 닿은 건 20번인데, 그 가운데 파울이 14개였다. 인플레이가 된 공은 단 6개, 그 중 하나가 번트였음을 감안하면 제대로 타격이 된 것은 딱 5개였다.
사실 오승환이 던지는 150km의 직구는 이제 한국 프로야구에서 못 칠 정도로 빠른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오승환의 공은 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아서' 들어온다. 혹자는 종속이 좋다고도 표현하는데, 그보다는 오승환의 압도적인 악력 덕분에 공의 회전수가 많아 다른 투수의 직구와 비교했을 때 덜 떨어지는 것에 가깝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인 18.44m를 날아오면 원 궤적보다 아래로 떨어지는데, 오승환의 공의 낙폭은 다른 투수보다 적은 것이다. 그래서 타자들은 방망이는 공의 아래부분을 지나가기 일쑤고, 친다고 하더라도 파울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9개의 슬라이더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했다. 직구 하나만으로 한국야구를 평정한 오승환에 대해 변화구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날 오승환의 슬라이더는 최고 145km까지 나오면서 위력적인 움직임까지 보여줬다. 움직임이 크지는 않지만, 타자 앞에서 갑자기 가라앉는 그의 슬라이더는 강속구를 생각하고 있는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날 던지지는 않았지만 오승환은 최근 체인지업 계통의 떨어지는 공까지 장착한 상태다.
그리고 오승환의 직구는 결코 직선으로 날아오지 않는다. 공의 움직임이 심한 편인데, 볼 끝이 살아있어 직구도 춤을 추면서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게다가 몇몇 직구는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투심 패스트볼과 같은 움직임까지 보여줬다. 오승환의 4이닝 8탈삼진 역투는 제구와 공의 움직임, 구위, 슬라이더까지 모두 합쳐졌기에 가능했다.
최근 미국 언론은 뉴욕 양키스가 오승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불세출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로 그 자리를 셋업맨 데이빗 로버트슨이 채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8회를 막아줄 투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기량만큼 중요한 것이 체력이다. 162경기를 치르는데다가 오승환이 만약 마무리가 아닌 셋업맨으로 메이저리그를 가게 된다면 한국에서보다 더 긴 이닝을 소화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오승환에게 한국시리즈 2차전은 지우고싶은 기억일지 몰라도, 그를 주목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됐을 것이 틀림없다. 마음껏 쇼케이스를 펼친 오승환의 2014년 행선지가 벌써부터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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