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끊어졌다더라. 롯데의 (이)명우는 수술하고 1년 있다가 멀쩡히 잘 던지던데 나만 왜 이러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도 유례가 없던 팔꿈치 인대 재수술. 그것도 재활 과정에서 인대가 끊어졌다. 주변에서는 그의 야구인생을 안타까워하며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냐는 말로 그의 재기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간절했던 잠실 마운드에 올라 팀의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인생투를 펼쳤다. 두산 베어스 베테랑 우완 이재우(33)는 28일 잠실벌에서 단순한 공이 아닌 인생을 던졌다.
이재우는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탈삼진 8개를 솎아내며 2피안타(사사구 3개)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고 구속은 143km 정도로 전성 시절에 비해 10km 가량 느렸으나 결정구로 꺼내든 포크볼의 구사력이 뛰어났고 완급 조절과 위기관리 능력도 뛰어났다. 그 이재우의 호투 덕택에 팀은 막판 삼성의 추격을 따돌리고 2-1 신승을 거뒀다.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단 1승을 남겨뒀다.

1998년 휘문고 졸업 당시 전신 OB에 2차 12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탐라대 2학년 시절 발목 골절상으로 내야수로 1차 선수 은퇴를 했던 이재우는 자신의 지명권을 가졌던 두산에 기록원 및 훈련 보조로 입단했다. 그러나 김경문 당시 배터리코치는 이재우의 공을 받아주며 “투수로서 가능성이 크다”라고 칭찬했고 이듬해 정식 선수가 되었다.
2004년 김경문 코치가 감독이 된 이후 이재우는 두산 투수진에 없어서는 안될 투수로 자리잡았다. 2005년 100이닝 가까이(99⅓이닝) 소화하는 계투 역투로 28홀드로 홀드왕이 되었고 2008년에는 계투로 11승을 올렸다. 2009년에는 계투 KILL 라인 맏형으로 팀을 다잡았다. 팔꿈치가 아파도 진통제 투혼을 펼치며 팀을 지탱했던 그 이재우다.
결국 부상 투혼은 탈이 났다. 4선발로 시작한 2010시즌 이재우는 두 경기 째만에 팔꿈치가 아파 내려갔고 결국 2010년 8월 미국 LA 조브 클리닉에서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 그러나 2011년 6월 재활 과정에서 팔꿈치 인대가 또 끊어졌다. 조브 클리닉 측이 ‘이런 경우는 의학계에서도 거의 없어 재수술이 불가능하다’라고 난색을 표했을 정도다. 이재우는 그해 7월 국내에서 재수술을 받았고 재활을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한숨만 쉬었다. 주변에서는 팔꿈치를 두 번이나 수술한 이재우에 대해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재기할 수 있을까’라며 물음표만 붙였다.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겠는가. FA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술과 재활이 힘들 뿐이다. 그저 잠실 마운드에 선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아내의 고생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딸 윤서에게 아버지가 프로야구 선수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지난해 9월 오랜만에 1군 무대를 밟아 잠시나마 공을 던진 이재우는 올 시즌 계투에서 선발로 이동하며 30경기 5승2패 평균자책점 4.73을 기록했다. 그리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났다고 했던 투수의 1군 무대 복귀다. 그리고 2008년 SK와의 한국시리즈 이후 5년 만에 밟은 한국시리즈 무대. 그것도 선발로서 뛰어난 호투를 펼쳤다. 5이닝 째에서 물러난 것은 아쉬움이 있지만 부상 전력을 지녔고 선발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던 이재우임을 감안하면 호투 자체가 감동이다.
“시즌 때 1군 마운드에 계속 오르면서 솔직히 욕심이 커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팔꿈치가 아프면서 ‘아, 정말 끝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고. 인생 뭐 있나. 그냥 가는 거다”. 이재우의 28일 인생투는 단순한 85구가 아니다. 공 하나하나는 수술과 재활로 날려버린 2년 넘는 시간의 고생과 노력. 그리고 다시 잠실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그가 흘렸던 눈물이 담겼다. 그는 그토록 오르고 싶어했던 잠실 마운드에서 한국시리즈의 영웅 중 한 명이 되었다.
farinelli@osen.co.kr
잠실=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