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이재우의 인생투 원동력 ‘책임감’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10.29 06: 08

“만루 위기에서 내가 바뀌지 않길 바랐다. 내가 해결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다잡지 못해 책임감이 부담감으로 바뀌면 뒤따르는 후폭풍의 부채에 허덕이며 쓰러진다. 그러나 그 책임감을 바탕으로 위기를 넘어섰을 때 사람이나 기업이나 모두 더 큰 몸집을 갖고 더욱 커다란 존재가 된다. 선수 생명의 위기를 넘어 재기투를 선보이고 있는 이재우(33, 두산 베어스)를 지탱한 것은 바로 책임감이었다.
이재우는 지난 2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탈삼진 8개를 솎아내며 2피안타(사사구 3개)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최고 구속은 143km 정도로 전성 시절에 비해 10km 가량 느렸으나 결정구로 꺼내든 포크볼의 구사력이 뛰어났고 완급 조절과 위기관리 능력도 뛰어났다.

그 이재우의 호투 덕택에 팀은 막판 삼성의 추격을 따돌리고 2-1 신승을 거뒀다.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단 1승을 남겨뒀다. 경기 후 이재우는 “팔꿈치 수술 두 번 후 재활 3년을 버티다보니 내게도 이런 날이 왔다”라며 감격했다.
이날 경기 승부처이자 이재우의 위기는 바로 3회초 2사 만루. 안타 하나면 2-0 리드가 동점으로 이어지고 장타면 그대로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재우는 박석민과 대결 끝에 스탠딩 삼진을 잡아냈다. 당시 두산 불펜은 후속 롱릴리프인 데릭 핸킨스를 준비시키며 만일을 대비하고 있었으나 이재우가 이 위기를 막아낸 뒤 5회까지 별 탈 없이 선발로 무실점투를 선보였다.
“내가 막고 싶었다. 위기가 오면 곧바로 바뀔 수 있다는 언질을 경기 전 받았는데 내가 초래한 위기는 나 스스로 막고 싶었다. 다행히 나의 혼이 삼성의 기보다 더욱 셌던 것 같다”. 김진욱 감독은 이재우의 투구를 지켜보며 “2스트라이크가 된 뒤 ‘앗’ 기합을 외치면서 던지더라. 정신력으로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었다”라는 말로 이재우의 투혼을 높이 샀다.
사실 이재우는 대범한 성격의 선수가 아니다. 팔꿈치 수술 이전에는 151km에 달하는 빠른 직구와 날카로운 포크볼, 슬라이더-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자랑했다. 마운드에서는 당당했으나 평상시에는 예민한 편이었다. 부상을 겪고 난 뒤에는 투구 시에도 위기 때 움츠러드는 기색을 비췄다. 선발 등판 시 5회 위기를 자초하는 것도 이 부분과 관련되었으나 이번에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그가 시즌 초반 임시 마무리를 맡았을 당시 4월14일 잠실 롯데전서 9회 등판했으나 ⅔이닝 2실점으로 동점 허용과 함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경기는 연장 끝에 두산의 승리로 이어졌으나 이날 이재우는 많이 자책했다. 단순한 블론세이브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점 허용으로 후배가 다쳤다는 데 걱정이 많았다.
“내가 막았어야 했다. 내가 동점을 내주고 연장을 가는 바람에 (민)병헌이가 연장전에서 허벅지를 다쳤다. 내가 경기를 온전히 마쳤다면 병헌이가 안 다쳤을 텐데”. 이재우는 민병헌이 이날 부상 후 한동안 통증을 안고 뛰어왔다는 데 크게 미안해했다. 후반기 선발 전향 후에도 부상 전력을 지닌 자신에게 팀이 몸의 회복기를 제공해준다는 데 고마워하면서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데 대해 또 미안해하던 이재우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확실히 도맡아 해결했다. 부상 전력이 있고 시즌 전부터 선발 훈련을 한 투수가 아니라 5이닝 째에서 바통을 넘겼다는 것이 옥의 티였으나 내용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책임감에서 비롯된 호투였다. 대범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내고 싶어했던 이재우의 책임감은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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