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의 승패보다 멀리 내다보고 신인을 키운다.’
‘만수’로 통하는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의 수장 유재학 감독의 전략이다. 한 때 모비스는 ‘재활공장’으로 통했다. 박종천, 우승연 등 다른 팀에서 활약이 미미했던 선수들이 모비스에만 가면 부활했기 때문이다. 모비스는 신인들을 잘 조련하는 ‘신인사관학교’로도 유명하다. 유재학 감독은 ‘흙속의 진주’인 신인을 캐내 ‘선수’로 키워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현재 모비스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양동근과 함지훈도 유 감독의 작품이다. 양동근은 2004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데뷔했다. 하지만 초창기 유 감독에게 ‘선수도 아니다’는 혹평을 들었다. 득점력은 좋았지만 포인트가드로서 갖춰야 할 패스나 시야가 부족했기 때문. 함지훈도 ‘운동능력 없는 언더사이즈 빅맨’이란 평가로 200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0위까지 밀렸다. 하지만 현재 두 선수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프로농구 대표스타가 됐다.

올 시즌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1라운드 9순위), 김영현(1라운드 10순위), 이대성(2라운드 1순위), 김주성(3라운드 10순위) 네 명의 신인을 대거 선발했다. 출신도 다양하다. 전준범과 김영현은 농구명문 연세대와 경희대 출신. 이대성은 중앙대를 중퇴하고 美브리검영대 하와이캠퍼스에서 농구했다. 김주성은 상명대출신의 드래프티다. 유 감독은 경력보다 가능성에 주목하는 편이다.
올해 신인들 중 현재까지 팀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는 단연 전준범이다. 그는 경복고시절까지 김종규에 이어 부동의 랭킹 2위 포워드였다. 하지만 연세대시절 부상과 운동부족으로 기량이 정체됐다. 유 감독은 195cm 장신슈터에 탄력이 좋은 전준범의 능력을 십분 끌어내고 있다. 현재 전준범은 5.4점, 1.9리바운드, 1.3어시스트, 경기당 3점슛 0.8개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지난 25일 전자랜드전에서 전준범은 종료직전 자유투 2구를 얻었다. 모두 넣으면 동점이 되는 상황. 당황한 전준범은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쳤고 모비스는 졌다. 경기 후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을 질책하지 않았다. 신인선수의 기를 죽일 수 있기 때문. 유 감독은 “준범이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무릎이 안 구부러지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자유투를 쏘겠다고 하더라. 전준범은 앞으로 커야 하는 선수다.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격려했다.
다음 SK전에서 전준범은 27분 동안 9점을 넣으며 활약했다. 하지만 막판 집중력이 흐트러져 결정적 리바운드를 못 잡았다. 모비스는 3연패를 당했다. 경기 후 유 감독은 “전준범이 마지막에 리바운드만 잡아도 이기는 경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재학 감독은 이어진 LG전에서 전준범을 또 29분 뛰게 했다. 모비스는 79-72로 역전승하며 3연패를 끊었다. 자칫 자기 때문에 3연패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신인선수는 계속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게 됐다.

유재학 감독은 선수의 특성을 파악해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린다. 흔히 유 감독은 꽉 짜진 조직농구를 선호하고 튀는 선수를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농구를 배운 이대성은 화려한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는 로드 벤슨에게 비하인드 노룩패스를 날리다 실책을 범했고, 노마크 기회서 덩크슛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유 감독은 그런 이대성을 그냥 놔두고 있다. 왜일까.
유 감독은 “(이)대성이의 노룩패스는 본인의 실력이다. 까불고 멋내려고 하는 플레이가 아니라 본인의 장점이다. 실수했을 때 질책을 하면 기가 죽을 것 같아서 놔두고 있다”고 밝혔다. 선수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겠다는 의미다. 29일 LG전에서 유 감독은 이대성을 주전으로 썼다. 이지원과 박구영의 부상을 감안해도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이대성은 3점슛 하나를 자신 있게 꽂았다. 비록 뛴 시간은 10분에 불과했지만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는 감독의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 받았다.
지난 시즌 초반 김시래는 양동근과 투가드로 뛰면서 애를 먹었다. 하지만 유 감독은 몇 패를 감수하면서까지 뚝심 있게 김시래를 키웠다. 결국 김시래는 모비스 우승에 일조했고, 이제 정상급 가드로 성장했다. 유 감독이 전준범과 이대성 등 신인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같다고 보면 된다.
양동근은 “전준범은 그 실수 하나로 앞으로 더 큰 경기에서 더 잘할 것이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김시래도 앞으로 더 잘될 것”이라며 후배들을 챙기고 있다. 모비스가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jasonseo34@osen.co.kr
전준범(위) / 이대성(아래)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