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자".
삼성은 두산과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1승3패로 벼랑끝까지 내몰렸다.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지만 두산의 기세에 무기력하게 밀렸다. 베테랑 박한이는 "4차전이 끝난 후 너무 열이 받아서 잠을 설쳤을 정도"라고 분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최형우는 달랐다. 최형우는 4차전 이후 기분에 대해 "잠을 못잔 선수들이 많은데 난 그냥 빨리 잤다.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싶었다. 계속 갖고 있어 봤자 도움될 게 없다"고 말했다. 안 좋은 기억은 잊고, 남은 경기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최형우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그는 "우리 타자들이 노경은의 공을 너무 못쳤다"고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로부터 2차전부터 5차전까지 4경기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만회하고 있다. 특히 5차전에서 홈런 포함해 3안타를 터뜨렸다. 한국시리즈 5경기 20타수 8안타 타율 4할로 양 팀 통틀어 최고 타율을 기록 중이다.
최형우는 평상심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5차전을 앞두고 타자들이 따로 지시를 받은 것도 없고, 선수들끼리 어떤 식으로 쳐보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며 "평소처럼 훈련했다. 선수 각자가 알아서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경기라고 해서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보다 부담없이 각자 역할을 강조했다.
최형우의 말대로 삼성은 중심타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자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특히 최형우는 4회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는데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드물게 나온 밀어친 홈런이었다. 밀어친 홈런의 의미에 대해 최형우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며 농담했지만 높은 직구를 결대로 밀어치며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
1회 중전 안타, 5회 유격수 내야안타 모두 밀어친 타구였다. 류중일 감독도 이날 경기 후 "우타자들은 오른쪽으로, 좌타자들은 왼쪽으로 밀어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타자들이 큰 스윙을 버리고 결대로 밀어치는 타격이 이뤄지자 언제 부진했냐는듯 살아났다.
최형우는 "아직 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한다. 계속 또 경기가 남아있다"며 "5차전을 이긴 만큼 6차전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대역전 우승의 의지를 다졌다. 올해 팀 내에서 가장 꾸준하게 활약을 한 최형우의 존재감이 한국시리즈에서도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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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