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갑수가 기다렸다는 듯 인자한 아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환한 미소와 함께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영화를 보셨느냐.” 그만큼 그는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손예진-김갑수가 주연한 영화 ‘공범’(국동석 감독)은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의 공소시효 15일 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아빠를 떠올리게 되면서 시작되는 딸 다은의 잔인한 의심을 그려내는 작품. 지난 24일 개봉해 일주일간 박스오피스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본 후 받은 느낌은 “드라마가 참 좋다”는 점이었다. 김갑수의 말처럼 ‘공범’은 스릴러 장르의 특성 뿐 아니라 아버지와 딸 관계에서 드러나는 관계, 그 안에서 오가는 감정들을 제대로 살려내 ‘감성’ 스릴러라 불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아버지와 딸 둘 사이에서 이뤄지는 얘기를 다루고 있어 이게 자칫 밋밋하지는 않을까했죠. 화려한 디테일이나 화면을 요하는 작품이 아닌데, 관객들은 아무래도 싸우고, 피가 낭자한 그런 자극적인 영화가 더 익숙하실 터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이 되긴 했죠.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선택했던 이유도 그렇고, 겉으로 보이는 자극보다는 사람의 내면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뭐 숨 쉴 틈이 없었다고 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말하며, 김갑수는 딸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손예진과 연출을 맡은 국동석 감독, 제작자인 박진표 감독에 대해 칭찬을 이어갔다.
“이번 작품이 국동석 감독에게는 첫 작품이에요.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신인 감독들한테 관심이 많이 가요. 호기심 때문이죠. 신인 감독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또 영화를 어떻게 만들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요. 어찌 보면 하나의 모험이라 할 수 있는데…. 참, 찾아가는 재미가 있죠.”
이번 영화를 통해 지난 2007년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춘 후 또 한 번 제대로 된 부녀 연기를 보여주게 됐다. 손예진의 이야기를 할 때, 김갑수의 얼굴에 또 한 번 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예진이랑 딸로 호흡을 맞춘 것도 이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에요. (손예진이)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그런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죠. 같이 처음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니까 작업을 하면서 훨씬 편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월도 많이 흘렀고, 내가 또 한참 선배고 그러니까 불편해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 만나보니 그런 우려는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어요.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정말 그대로에요.”

영화를 찍으면서 김갑수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딸 손예진의 계속되는 의심을 받으며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순만의 입장이 답답했다고. 의심 가는 행동을 했다가, 또 결백함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였다가 하는 그 아슬아슬한 수위 조절 속에서 폭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했단다.
“아니면 아니다. 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정말 강하게 얘기하면 맞는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표현을 못하는 게 나는 굉장히 답답했죠. 그런 답답함을 작품이 끝나는 내내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순만의 역할로는 맞아요.(웃음)”
90년대 들어 김갑수는 영화 보다 드라마에 얼굴을 더 많이 내밀고 있다. 영화 보다 드라마를 더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유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웠다. 역할의 한계가 있었던 것.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 영화 쪽에 할 역할이 많지 않더군요. 보스라던가 회장, 뒤에서 조정하고 그런 역할은 썩 마음에 안들었어요. 솔직히 인간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2년 전 영화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했어요. 결과는 좋지 않았는데 드라마는 굉장히 탄탄했어요. 조금 제 영화 취향이 그런 것 같아요. 드라마가 탄탄하고 인간적인 역할을 원하죠."
김갑수는 할리우드 영화 속 클린트 이스트 우드처럼 참 인간적인 배역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같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언젠가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영화를 우리나라에서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아서 쉽지는 않겠죠. 관객이 그 외국영화들처럼 받아들여줄 것인지도 문제고요.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가능할 것 같아요. 많은 영화를 하고, 또 했으면 나중엔 그 정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영화를 하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오랫동안 나이를 먹어도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는 우리도 그런 영화,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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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