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에게 구원받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여심을 사로잡는 어쩔 수 없는 베스트셀러다. 현실의 많은 여성들은 작고 낡은 원룸에서 월세를 걱정하고 아무리 비교해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연애를 하며 전전긍긍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아찔한 로맨스는 '절대' 내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 TV 속에 그리고 영화 속에서 우리를 위로한다. 그래서 구태의연하다고 늘 손가락질을 받는 이 신데렐라 스토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될 장르로 자리하고 있다. 허황된 욕망을 부추긴다는 지적 이면에 너무도 보통이고 때로는 지친 여성들에게 힐링과 위안을 안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김은숙 작가의 또 하나의 신데렐라 이야기 SBS '상속자들'은 다시 한 번 매력적이다. 전작인 '신사의 품격'이나 '시크릿 가든', 더 나아가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연인 시리즈'처럼 우월한 남자(보통 재벌 2세)와 못 가진 여자(혹은 지극히 평범한)의 극명한 대비, 그리고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결국 사랑으로 화합한다는 기본 골격이 '상속자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엔 주연 캐릭터들의 연령대가 확 낮아졌다. 김 작가는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를 기획하면서 '잘한 걸 더 잘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어떤 그릇에 담을까 고민을 하다가 안 해본 것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캐릭터들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했다"며 "하지만 새롭게 만든 이야기, 새로운 소재가 아닐 바엔 반보 앞선, 상상치 못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피소드를 꾸리거나 대사 쓸 때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꽤 신선할 거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잘하는 것이 결국 신데렐라 스토리를 골격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임을 인정하면서 늘 반복되는 장르에 관해 쏟아질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말이었다.

'잘한 걸 더 잘해보자'라는 말 자체가 꽤 자신감 넘친다. 김 작가의 이 섹시한 자신감은 곧 그의 대본과 작품에 대한 정체성이다.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남자가 못 먹고 못 입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를 구원하게 되는 그 뻔한 스토리도 김 작가의 머리와 손을 거쳐 조금은 새롭게 어딘가 색다르게 태어나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이건 그간의 시청률 성적이 입증하고 있다. 이번 '상속자들'의 경우, 김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반응이 시시하단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별로다, 글렀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총 20부작 중 아직 절반도 방송되지 않았고 극중 김탄(이민호 분)-차은상(박신혜 분)-최영도(김우빈 분)의 삼각 로맨스가 이제 막 시동을 거는 참이기 때문.
또 준비되지 않은 아이돌들의 연기 도전이 논란을 낳은 요즘, 아이돌을 대거 투입해 캐스팅을 완성한 것에 대해서도 김 작가는 신조가 뚜렷했다.
"안 믿을 줄 모르겠지만 크리스탈, 박형식, 강민혁 같은 경우 다른 배우들과 같이 오디션을 다 같이 봤다. 그 중에서 그 친구들이 잘 했기 때문에 캐스팅 했다. 에너지 넘치는 명수 역할을 박형식이 제일 잘 했고 보나 역을 맡은 크리스탈이 철딱서니 없고 착하고 부잣집 아가씨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연기를 크리스탈만큼 잘하는 연기자가 없었다"며 "나름 우리는 연기 잘하는 연기자를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돌이라서 뽑혔다는 반응이 있었다. ‘왜 아이돌이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낸 것.
김 작가와 연출자 강신효 PD의 이 같은 자신감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크리스탈, 박형식, 강민혁 등은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등 정통 배우들과 섞여 모난 데 없는 연기를 펼치는 중이다.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눈에 띄고 전문가나 언론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왜 아이돌이면 안 되는 거지'라던 김 작가의 생각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될성부른 연기돌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섹시하고 사악한 격정 하이틴 로맨스', '상속자들'은 김 작가의 이토록 발칙한(?) 자신감이 없다면 태어날 수 없는 드라마다. 대놓고 부유층 자제들의 비현실 같은 세계를 그리고 또 대놓고 백마 탄 왕자의 신데렐라 구하기를 얘기하지만, 위화감을 조장한다거나 식상하다거나 진부하다는 식의 비난을 넘는 애청자들의 애탄 목소리들이 김 작가를 채찍질하고 있다.
issu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