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혜가 이제 '우리'라는 이름표를 완전히 떼고 배우로서 한 단계 날아오른다.
김윤혜는 미스터리 멜로 영화 '소녀'(최진성 감독, 11월 7일 개봉)를 통해 스크린 본격 주연 첫 발을 내딛었다. 영화는 말 실수로 친구를 죽게 한 소년 윤수(김시후)와 잔혹한 소문에 휩싸인 소녀(해원), 닮은 상처를 알아본 이들의 위태롭고 아픈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주연으로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스크린을 제대로 못 쳐다봤다는 그는 화려한 레드카펫에서 '소녀'라는 한자의 헤나를 어깨에 새겨 주목을 받기도. "작년에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는 '포스터가 붙여진 (배우) 분들은 정말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해 '소녀' 포스터가 있었죠. 정말 좋은데 책임감도 막 느껴지더라고요. 포스터 앞에서 휴대폰으로 인증샷 찍었어요. 하하."

극 중 해원은 입을 닫아버린, 비밀스럽고 사연 많아 보이는 소녀다. 슬픔의 정서가 가득해 무서움까지도 느껴진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 또한 갖고 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시나리오 너무 좋았다"라며 "너무 무섭더라"는 얘기를 꺼냈다. 그 이유는 '잘 못할까봐'였다.
"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로서 정말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선택한 작품이거든요. 어려워도 많이 준비해서 하면 될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고요. 감독님과 (김)시후 오빠가 정말 많이 도와줘서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 김시후와 셋이 '시나리오 책거리'도 하면서 각별하게 준비한 작품이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영화는 김윤혜에게 최적화된 캐스팅이란 평과 함께 연기력에 있어도 호평을 얻고 있다. 쉽지 않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는 시선이 크다.
"해원이가 무표정하지만 그 안에서도 뭔가 말을 해야하거든요. 정적인 표정에서도 요동치는 감정들 많이 드러내야 했어요. 그런 게 좀 힘들었죠. 가만히 있어도 제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비밀스러움 같은 것을 표현해야 했었으니까요."
특별히 참고한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는 "감독님이 사진 같은 것을 보여줬다"라며 쓸쓸히 외로워 보이는 정서를 담은 사진들을 접했고, 또는 영화 '만추'의 탕웨이의 느낌 등도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사람의 '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실제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초등학교 때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델 활동했을 때 주위의 오해나 편견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라고 고백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의연해졌지만 어릴 때는 그런 말들을 믿어버리니까요. 그런 것 때문에 한참 힘들었죠."
이제 '우리'라는 이름표를 다 떼었다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어느 정도는 뗐다고 생각한다"라며 "화보 찍을 12살 정도 당시 우리라는 이름을 썼는데, 그 때 만난 분들은 아직도 '우리'라고 부른다. 애칭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김윤혜는 웃음이 많은 천상 20대 소녀다. 비밀스러움, 신비스러움 보다는 오히려 귀여움에 가깝다. 사람들이 이미지 때문에 오해하는 부분이 있겠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멍 때리고 있으면 '혹시 기분 안 좋니?'라고 물어보시곤 해요. 하하.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에요. 처음 만나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죠. 화보 이미지가 센 것도 한 몫했고요. 좀 새침하고 도도해 보이나봐요. 밥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주인 분이 '세 보인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 역시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크해 보인다, 묘하다 이런 말을 듣는 건 정말 좋아요"라며 다시한 번 환히 웃어보였다.
극 중 해원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신비로움과 청초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들어가기 3주 동안 스케이트를 배우며 실제 선수들과 함께 빙상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단다. 한창 몰두하다보니 7kg이 저절로 빠졌다고. 하지만 그런 외소한 모습이 해원이랑 잘 어울려 좋았다는 그에게서는 배우로서의 근성도 엿볼 수 있었다. "가녀리고 아파보이는 느낌이 해원이와 잘 어울려 좋았어요. 점점 앙상해져서 주위에서 한 마디씩 했지만요. 그 만큼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몸무게는 곧 많이 돌아왔죠. 워낙 잘 먹고 운동을 좋아해서요."

평소 운동을 즐긴다는 그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운동을 하러 다닌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버스에서 졸고 그래요. 아직 알아보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라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감독은 왜 김윤혜를 캐스팅했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내 스스로 말하기가 쑥스럽다"며 쑥스러워 해 웃음을 자아냈다. 말해달라는 끈질긴 요구. "제가 이중적이고 매력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모습이 해원과 잘 어울린다고요."
많은 여성 관객들은 '소녀'를 보고 '(이성에게서) 저런 사랑을 한 번 받아보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김윤혜 역시 대답했다. "저도요, 제게 연애도 하나의 관심사거든요. 저도 해바라기 사랑을 받은 해원이가 정말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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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