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영어를 잘 못했다. 반대로 다른 한 명은 통역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난해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합심했다. 하나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하나는 눈과 귀가 되어주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 그 결과는 메이저리그(MLB) 루키의 성공이었다. 류현진과 마틴 김이 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올해 LA 다저스에 입단하며 MLB 진출의 꿈을 이룬 류현진은 1년도 되지 않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잡음을 말끔하게 제거했다. 정규시즌에서 14승, 포스트시즌에서 1승을 거두며 1년 동안 15승을 따냈고 3.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투수 부문 순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류현진 스스로가 “99점”이라고 말할 정도의 환상적인 성적이었다.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이기도 했다.
류현진의 선천적인 재능과 기량, 그리고 노력이 결합된 결과였다.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간 뚝심이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지 류현진 혼자의 힘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도움도 컸다. 류현진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준 돈 매팅리 감독 및 코칭스태프, MLB 루키에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동료들, 경기마다 류현진을 성원한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류현진의 눈과 귀가 되어준 마틴 김이다.

마틴 김이 선수 기용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류현진에게 기술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류현진은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로 마틴 김을 뽑는 데 한치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의 MLB 및 팀 적응에 지대한 도움을 줬다는 의미다. 다저스가 류현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애당초 만날 운명조차 없었던 마틴 김은 한 시즌 내내 류현진을 지근거리에서 도우며 ‘성공’의 발판을 함께 만들어갔다.
류현진의 통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마틴 김은 류현진 입단 전부터 다저스의 국제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류현진의 통역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1인 2역’으로 변신했다. 그 후 한 시즌 내내 공식 인터뷰는 물론 클럽하우스,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도 동행하며 류현진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깔끔한 어투, 그리고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마틴 김은 류현진과 선수단 및 언론 사이의 가교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며 호평을 받았다.

어려운 점도 많았다. 마틴 김은 류현진과의 첫 만남에 대해 “‘영어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라고 물어봤었다”라고 회상한다. 일반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한국에서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던 류현진의 영어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 잘못 하다가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도 있었기에 마틴 김은 신중을 거듭했다. 마틴 김 자신도 통역 업무를 수행해 본적이 없었기에 배움의 연속이었다. 어찌보면 두 '초보'의 만남이기도 했지만 마틴 김은 노련하게 업무를 해결해나갔다.
통역 외에 선수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중요했다. 마틴 김은 “선수로서 하고 싶은 것이 안 될 때 힘든 모습이 많이 보였다”라고 떠올렸다. 그럴 때는 자신을 최대한 지우고 선수의 기분에 맞게끔 행동하는 것이 마틴 김의 임무였다. 엄연히 자신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었지만 마틴 김은 묵묵히 류현진의 일상을 돌봤다. 특히 선발 등판이 있는 날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류현진이 최대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은 한국 취재진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스타(?)가 된 마틴 김은 류현진과 함께 입국했다. 한국시리즈를 참관하기도 한 마틴 김은 1일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다저스 구단을 대표해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전 만난 마틴 김은 “시즌이 끝나면 한국에 한 번씩 들어오곤 했었다”라며 한국과의 인연을 설명하면서도 기자회견 열기에 대해서는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다. 정말 놀랍다”라고 웃었다. 마치 류현진에 대한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됐다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시즌 중 미국에서 만났던 몇몇 기자들과 반갑게 악수하며 별도로 감사함을 표시한 마틴 김은 이내 “여기는 통역이 필요 없어 같이 앉을 필요가 없다”라고 웃으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류현진이 입장하기 전 별도로 진행된 자신의 인터뷰가 설사 기자회견 분위기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내내 걱정한 마틴 김의 모습은 시즌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그림자였다. 그런 마틴 김은 다음주 출국해 '류현진 없는' 자신의 업무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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