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를 대표하는 수식어 중 하나인 화수분 야구는 대체로 야수가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수 뿐만 아니라 투수 방면에서도 좋은 선수들이 나왔다. 특히 그들이 없었다면 두산의 2013시즌은 장담할 수 없던 터라 활약이 더욱 값졌다.
두산은 지난 1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2013 한국시리즈 삼성과의 최종 5차전서 6회 집중 5실점을 이기지 못하고 3-7로 패했다. 한때 3승1패까지 앞서던 두산은 시리즈 전적 3승4패를 기록하며 페넌트레이스 4위팀의 한국시리즈 제패 꿈을 현실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16경기의 가을 야구 대장정을 치르며 분투했음을 감안하면 두산 선수단의 노력과 경기력은 분명 높은 점수를 받기 충분했다.
특히 이번 페넌트레이스와 포스트시즌에서는 두꺼운 야수층을 구축한 유망주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첫 1군 무대에서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지고 팀을 살린 20대 투수들이 있었다. 그동안 야수진의 힘은 높이 평가받았으나 투수력에서 아쉽다는 평을 받았던 두산은 좌완 유희관(27)과 우완 사이드암 오현택(28), 그리고 2년차 우완 윤명준(24)까지 발견했다.

올 시즌 베어스 프랜차이즈 사상 25년 만의 국내 좌완 10승 기록을 달성한 유희관은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와 LG와의 플레이오프 3경기서 유희관은 1승무패 평균자책점 0.84의 특급 성적을 보여주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 3⅔이닝 2실점 패배, 그리고 7차전 4⅓이닝 100구 2실점은 아쉬웠지만 그는 초보임에도 포스트시즌 특급 에이스의 풍모를 비췄다.

전반기 오현택이 없었다면 두산 마운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2년 간 상무에서 유희관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구종을 늘린 오현택은 전반기 동안 40경기 3승2패5세이브4홀드 평균자책점 2.30으로 전방위 계투로 활약했다. 후반기 주춤하기도 했으나 오현택이 롱릴리프와 셋업맨-마무리까지 종횡무진하지 않았더라면 두산은 오뉴월 투수난을 맞았을 때 더 무너질 뻔 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서 공은 큰 편이 아니었으나 페넌트레이스서 공헌한 바가 컸다.
올해 전반기 실망을 자아내던 윤명준은 후반기와 포스트시즌 팀 계투진을 지킨 새로운 주력 투수다. 고려대 시절 리그 최고 우완으로 활약했으나 지난해 데뷔 첫 해를 부상으로 날려버렸던 윤명준은 전반기서 난조를 보인 동시에 빈볼 징계로 8경기 출장 정지까지 받았다. 그를 엔트리에 넣고 징계 소화를 했던 코칭스태프에 대한 비난 공세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기 24경기 4승4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1.08로 특급투를 펼친 윤명준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 공을 던졌다. 특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의 만루작전을 성공시키는 배짱투가 돋보였다. 어이없이 빠지는 볼 없이 윤명준의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걸쳐 삼성의 방망이를 유도하거나 타자를 현혹하게 했다. 한국시리즈 동안 윤명준은 데릭 핸킨스와 함께 가장 믿음직한 계투로 활약했다.
한때 두산의 화수분 야구에 대해 “왜 투수는 비교적 잘 안 나오나”라는 팬들의 볼멘소리가 있었다. 상위 라운드 신인들은 부상에 허덕이며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병역의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이들의 주력 성장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대신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나 전반기서 아쉬웠던 투수 유망주들이 기량을 스스로 부쩍 키워 팀을 위기에서 구하고 한국시리즈 최종전까지 챔피언을 위협하는 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주목받지 못하던 유망주들은 스스로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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