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채태인(31, 삼성 내야수)은 애증의 대상에 가까웠다. 2008년 최형우, 박석민과 함께 삼성 타선의 세대 교체를 이끌었던 그는 2009년 타율 2할9푼3리 17홈런 72타점 58득점, 2010년 타율 2할9푼2리(356타수 104안타) 14홈런 54타점 48득점으로 주축 타자로서 제 역할을 소화했다.
하지만 채태인은 한 단계 더 성장하지는 못했다.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잇딴 부상과 부진 속에 2년간 쓰라린 아픔을 맛봤다. 류중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꾸준히 기회를 제공받았으나 기대 이하. 2011년 타율 2할2푼(182타수 40안타) 5홈런 28타점 25득점, 2012년 타율 2할7리(135타수 28안타) 1홈런 9타점 15득점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삼성의 중심 타선을 이끄는 핵심 선수에서 전력외 선수로 신분이 하락했다. 그는 올 시즌 1군 전훈 명단에서 빠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채태인은 "지금은 이렇게 됐지만 방망이 만큼은 정말 자신있다. 진짜 한 번 보여주고 싶다"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한때 그는 현역 은퇴를 심각히 고민하기도 했었다. "내 실력이 이것 밖에 안되는가 싶었다. 내가 이만큼 무너졌구나 하는 생각에 은퇴까지 생각해봤는데 지금껏 내가 한 게 야구 뿐이었다. 야구말곤 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실패자로 남는다는 게 정말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따르겠다"는 아내 김잔디 씨의 한 마디에 천군만마와 같은 힘을 얻었다.
올 시즌 채태인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활약이었다. 타율 3할8푼1리(299타수 114안타) 11홈런 53타점 52득점. 허벅지 및 어깨 부상 등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채태인의 방망이가 되살아난 뒤 삼성 타선의 짜임새는 더욱 좋아졌다. 올해 들어 아내 김잔디 씨와 딸 예빈, 아들 예준이의 대구구장 나들이도 부쩍 늘었다. 온 가족이 웃음을 잃지 않을 만큼 집안 분위기가 좋아졌다.
류 감독의 한결같은 믿음도 채태인의 활약에 한 몫 했었다. 일부 구단에서는 채태인을 영입하기 위해 삼성에 트레이드를 제안했다는 후문. 그럴때마다 류중일 감독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채태인의 방망이는 뜨거웠다. 타율 3할4푼5리(29타수 10안타) 2홈런 4타점 5득점. 아쉽게도 한구시리즈 MVP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성적만 놓고 본다면 결코 뒤지지 않은 활약이었다. 1일 두산을 7-3으로 꺾고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는 순간 채태인은 말했다. "정말 오늘 기분 최고다. 시리즈 때 팀에 도움돼 너무 기쁘다"고.
채태인은 지난해 연봉에서 54.5% 삭감된 5000만원에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시즌 내내 "나는 생계형 선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채태인. 올 겨울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는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낼 각오다. 5년 전 삼성 타선의 세대 교체를 이끌었던 최형우와 박석민의 활약과 고액 연봉을 부러워 했던 채태인은 드디어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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