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실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라며 선수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투수를 키워야 한다는 기조 아래 젊은 투수들, 이전까지 크게 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가 왔고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성과는 컸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대타 전략 등이 잘 맞아 떨어졌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은 2013 포스트시즌을 통해 특별한 ‘TOP 감독’은 되지 못했다. 막판 전략 실책도 있었으나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 뒤 감독의 공헌도 있었다.
두산은 지난 1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서 6회 집중 5실점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3-7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 3승1패까지 앞서던 두산의 시리즈 전적은 3승4패. 페넌트레이스 4위팀이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하는 역사는 쓰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분투하며 포스트시즌 총 16경기를 치른 공로는 대단했다.
올 시즌 두산은 두꺼운 야수층을 자랑하며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꼽혔으나 롤러코스터와 같은 행보를 보였다. 시즌 중반 투수난으로 인해 6위까지 추락하기도 했던 두산은 후반기에 가까워지며 다시 상승 곡선을 타고 9월 초순에는 선두권 경쟁까지 가세했다. 결정적으로 승부처에서 고개를 넘지 못하고 4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쳤다. 그러나 선수들의 투지가 큰 원동력이 되었고 선발진이 제 몫을 하면서 가을 야구 고비를 넘어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삼성을 벼랑까지 몰아갔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 그러나 기회를 주는 것은 감독의 몫. 김진욱 감독은 그동안 중용되지 못했던 선수들이나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또 성공을 거뒀다. 2012시즌 선발진 강화에는 성공했으나 고정화되지 않은 야수 주전 라인업, 그리고 투수 교체 타이밍 실기 현상이 많아지면서 전략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던 김 감독은 올 시즌 전반기에도 투수 기용에 대해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속내를 살펴보면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다. 두산은 계투진에 파이어볼러, 그리고 좌완을 새로 가세시켜 투수진의 색깔을 더하고자 했으나 유망주들의 기용은 전반기서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2년차 변진수는 지난해 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지금은 필승조가 된 윤명준도 전반기서는 내내 통타당했다. 무엇보다 추격조 롱릴리프에서 젊은 투수를 중용하고자 했으나 이들은 제 공을 던지지 못하고 크게 지는 경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투수를 키워보려던 김 감독의 전략은 부메랑이 되어 결과론적으로 이상한 투수 운용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팜에서도 부상자가 많아 마땅히 올릴 만한 투수를 찾기 힘들었던 터라 이 부분을 온전히 감독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무리가 있다. 반면 김 감독은 노경은이 지난 시즌 선발투수로 자리잡는 데 적극적으로 출장 기회를 줬고 올 시즌 유희관도 마찬가지다. 계투난 속에서 사이드암 오현택은 전반기 순수 계투 최다 이닝(47이닝)으로 분전했다. 노경은, 유희관, 오현택 모두 이전까지는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해 군입대하거나 오랫동안 2군에 묻혀있던 투수들이다.
전반기 8경기 출장 정지 조치에도 1군 엔트리에 넣는 고육책 속 윤명준은 후반기 필승 계투로 자리잡았다. 윤명준의 후반기 성적은 23경기 4승4세이브7세이브 평균자책점 1.06으로 특급 수준. 마무리로 점찍었던 홍상삼이 많은 승계주자 실점을 기록하며 페넌트레이스 계투진에서 기대만큼의 도움이 되지는 못했으나 LG와의 플레이오프서 그가 없었다면 한국시리즈행도 장담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선발진에 힘이 생긴 것은 김 감독의 부임 이후였으며 계투진에서도 조금씩 젊은 투수들이 성장 중이다. 어깨 부상 전력의 정재훈은 혹사 연투를 피하는 전략 속에 등판 기회를 얻고 후반기 마무리로 활약했다. 한국시리즈 4차전 선발승의 주인공 이재우도 계투로 뛸 당시 혹사 연투는 피해갔다.
두꺼운 야수진을 갖췄다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었다. 결과가 좋았다면 본전이고 안 좋았다면 좋은 야수층을 갖추고도 제대로 꿰지 못했다는 악평이 쏟아지게 마련. 그런데 후반기서부터 두산은 최준석-오재일 4번 타자 플래툰 시스템은 물론 우익수 민병헌을 중용하는 동시에 이종욱, 김현수의 부상 공백을 정수빈이 잘 메웠다. 베테랑 임재철도 교체요원으로 힘을 보탰고 전반기에는 내야진에서 허경민이 활약했다. 그리고 허경민이 부상을 당하자 이원석이 후반기 주전 3루수로서 믿음직하게 지키며 팀의 구색을 제대로 갖췄다.
주전 포수 양의지는 넓은 시야로 경기를 풀어갔다면 백업 포수 최재훈은 포스트시즌서 허를 찌르는 리드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야수들을 갖췄기 때문에 결과가 좋았던 것이지만 그들의 출장 기회 배분도 좋았다. 특히 후반기부터는 두산의 선수 기용 전략이 많이 맞아 떨어졌다. 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공이 큰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김 감독은 선수단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지도자였다. 지난 시즌에는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와도 소통이 되지 않으며 속내는 불통의 분위기가 되었다면 이번에는 김 감독은 물론 황병일 수석코치, 정명원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와의 소통이 잘 되었다. 선수들도 자신들을 팀의 부품이 아닌 선수로 생각해주는 감독 아래 한 뜻을 모았다. 커피를 좋아해 ‘커피 감독’으로 불리던 김 감독은 ‘그냥 커피’에서 ‘TOP'에 가깝게 떠올랐다. 좋은 기운도 함께 했으나 좋은 선수와 함께하며 그들에게 고마워했다는 점. 그리고 전략 자체도 확실히 지난해보다 좋아졌다는 평이 많았다.
2014년은 김 감독의 계약 마지막해이다. 팬들은 물론이고 야구 관계자들도 김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과정론, 그리고 팀의 속내를 생각하면 김 감독의 용병술은 납득이 가는 부분도 컸다. 두 시즌 동안의 학습효과. 김 감독은 다음 시즌 이 경험들을 잘 살려 팬들이 납득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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