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비디오판독, 심판 권위 해치지 않는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11.04 05: 59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시대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낸다. 스포츠도 그 기술의 덕을 톡톡히 보는 영역이다. 50년 전과 비교하면 최근 스포츠 환경은 모든 측면에서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심판의 영역은 아직까지 굳건하다. 불가침의 영역이냐, 아니면 보완해야 할 영역이냐.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판정에 있어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스포츠도 많다. 그리고 그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수적인 집단도 더러 있다. 전 세계 스포츠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구와 야구가 그렇다. 축구의 경우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 당시 논란을 일으킨 제프 허스트의 골 이후 끊임없이 골라인 비디오판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40년 넘게 먼지만 날리고 있다. 야구도 세이프-아웃 판정을 놓고 오심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역시 변화는 더디다. 판이 클수록 물꼬를 트는 것도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는 점진적인 변화가 보인다. 6심제라는 카드로 버텨왔던 축구계는 골라인 비디오판독에 대한 자세가 좀 더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야구계를 선도하는 미 메이저리그(MLB)는 홈런-파울 여부에 대한 비디오판독에 이어 내년부터는 아웃-세이프 판정에서도 비디오판독의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구단주 총회의 승인만 남았는데 사실상 통과되는 분위기다.

결국 시대의 요구를 MLB 사무국과 심판협회가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MLB는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다. 그만큼 심판들도 철저한 훈련과 검증을 거쳐 MLB 구장에 선다. 그럼에도 오심은 끊이지 않는다. MLB 심판이라고 해서 기계처럼 잘 볼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아웃-세이프 판정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이는 일부 감독들의 ‘퇴장 매뉴얼’로 자리 잡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MLB의 비디오판독 확대는 야구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일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MLB도 비디오판독에 대한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내부 진통이 심했다. 역시 심판협회가 미온적, 아니 부정적이었다. 권위가 생명인 심판들의 특성상 내부 분위기는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가 심판의 영역을 침범한다”라는 명제에 반발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비교적 유연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심판들이 오심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경우도 많고 제 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 협회 차원의 징계도 이뤄진다.
그렇다면 비디오판독이 MLB 심판의 권위를 해치는 것일까. 물론 오심이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 심판은 낯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일부는 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심판들이 오심에 대한 변명을 “심판도 사람이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MLB의 비디오판독 역시 “심판도 사람이다”라는 동일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편 그것을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심은 최소화해야 한다”라는 대명제는 비디오판독 찬반론자 모두 공히 인정했다. 꼬인 실타래는 이렇게 점차 풀려나갔다.
한국프로야구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올해는 유난히 오심으로 얼룩진 한 해로 기억된다. 사실 국내 심판들의 수준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매우 높다. 심판들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국제무대를 진행한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오심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오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팬들의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비디오판독에 대한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하지만 시행까지는 아직 난관이 많다. 현장 환경의 문제도 있지만 역시 심판의 권위에 대한 부분이 발목을 잡는다. MLB가 걸어왔던 길을 우리도 비슷하게 밟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비난,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가 출발하는 지점을 잘 생각해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야구 문화도 성숙해졌다. 오심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한다. 팬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 오심을 되돌릴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팀과 선수들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것이다. 이는 심판의 권위적인 모습을 더 부추기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급기야 승패의 갈림은 모두 ‘심판 탓’이 된다. 이쯤 오면 심판들에게도 손해다.
경기당 1회 정도 등 적절한 수준의 비디오판독은 심판의 권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오심을 바로잡아 경기가 공정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땀 흘려 노력하는 심판들에게 해가 될 것이 없다. 지난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최준석의 홈런은 처음에는 2루타로 인정됐다. 하지만 비디오판독으로 정정됐고 경기는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당시 좌선심은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았다. 만약 비디오판독이 없었다면 또 한 번 난리가 날 뻔했다. 오히려 판정을 놓고 감독과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심판의 권위를 더 추락시키는 일이 아닌지 자문해 볼 때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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