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리 밑이 아니다. 일본여자농구가 명실상부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위성우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3일(이하 한국시간) 태국 방콕에 위치한 방콕 유스 센터에서 열린 25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일본에 43-65로 완패를 당했다. 한국은 리바운드에서 19-31로 압도적으로 밀리며 철저히 제공권을 제압당했다. 일본의 괴물센터 도카시키 라무(22)는 20점, 18리바운드로 한국 골밑을 유린했다.
힘의 차이가 명백했던 완패였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올림픽 최종예선전 28점차 완패, 올해 아시아선수권 예선전 71-78 역전패를 포함, 일본전 3연패에 빠지게 됐다. 항상 한 수 아래로 봤던 일본농구가 이제 한국을 추월했음을 시인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일본의 성장은 예견된 결과였다. 일본은 체계적인 국가대표팀 지원시스템 구축, 협회의 막대한 자금지원, 엄청난 저변에서 나오는 꾸준한 유망주 발굴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며 농구는 물론 배구 등 여타 구기종목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그 결과 일본은 소수 엘리트스포츠에 의존해 온 한국을 추월하는 성과를 내게 된 것이다. 우월한 국가대표팀 성적을 근거로 ‘일본은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자부해왔던 한국의 논리는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됐다.
한국은 여자농구에 앞서 여자배구가 먼저 일본에 추월을 허용했다. 1980년대 이전처럼 일본에 다시 뒤지게 된 지 이미 오래다. 가장 가까운 예로 지난 9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준결승에서 한국은 일본에 세트스코어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세계적 스타 김연경(25, 페네르바체)을 보유하고도 조직적인 일본배구를 당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자배구는 김연경 외에도 김희진(22, IBK기업은행) 등 젊은 스타들이 성장해 세대교체와 신구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라도 들었다.

반면 한국여자농구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이번 대회서 주전으로 맹활약한 신정자(33), 변연하(33), 임영희(33), 이미선(34)은 이제 은퇴를 앞둔 노장들이다. 김단비(23), 김정은(23), 박혜진(23) 등이 활약했지만 언니들과의 기량 차는 컸다. 한마디로 신구조화가 되지 않고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도 부족한 형편.
오가 유코(30)를 제외한 일본의 주축선수들은 이제 20대 초중반이다. 특히 도카시키 라무(22)의 경우 향후 10년 이상 한국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몇 년 뒤 우리나라 노장들이 은퇴하고 일본의 젊은 선수들이 전성기에 이르면 양국의 격차는 훨씬 커지게 된다.
최근까지 일본농구는 한국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고비 때마다 힘없이 무너지던 일본은 한국의 악바리근성까지 물려받았다. 일본은 연령별로 각급대표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A대표팀의 경우 미국과 유럽으로 원정을 떠나 세계정상급 팀들과 맞붙고 있다. 쓸데없는 투자가 아니었음이 이번 대회를 통해 증명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제대회 참가자체가 신기할 지경이다. 여고 대회 결승전에 한 팀 3명이 뛰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대표팀이 A매치는커녕 프로팀 또는 고교팀과 국내서 겨우 연습을 하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실정이다. 매년 프로리그서 격전을 치른 선수들은 항상 부상을 몸에 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번 대회 준우승은 노장들이 선사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입장이 정반대다. 한국농구가 일본의 선진화된 대표팀 지원과 유망주 육성시스템을 적극 본받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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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