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18.44m] 류현진, 구종 추가는 아직 이르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11.05 06: 29

류현진(26,LA 다저스)도 너클볼을 던질 줄 안다. 물론 실전이 아니라 동료들과 캐치볼을 할 때 장난삼아 던지는 셈이다. 그 뿐이랴, 포크볼이나 컷 패스트볼 등 다양한 구종을 모두 '던질 줄은' 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던질 줄 아는 것과 실전에서 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구위나 제구 모두 타자들을 누를 정도가 되지 못한다면 안 던지느니만 못한 것이 변화구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추는 건 좋지만, 실제로 '팔색조' 투수가 많지 않은 건 이러한 이유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첫 해 던진 구종은 딱 4가지다. 패스트볼(52.3%), 체인지업(22.3%), 슬라이더(13.9%), 커브(9.5%)를 던졌는데 기록 전문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 자료에서는 패스트볼을 포심(31.3%)과 투심(22.3%)으로 구분하고 있다. 다만 패스트볼이 둘로 나뉘는 건 투구궤적 추적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류현진 본인은 "투심은 안 던진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단순하게 패스트볼로 보는 것이 옳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 변형 패스트볼의 추가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속구 투수가 아닌 류현진이기에 쉽게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투심이나 커터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류현진은 특별한 구종추가 없이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이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마쳤다.
그럼에도 류현진이 내년 구종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일 귀국 공식 기자회견에서 류현진은 "구종 추가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비밀스럽게 구종개발을 할 가능성도 있지만, 류현진은 정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류현진은 변형 패스트볼에 손을 댄 적이 있다. 한화 이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 류현진은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게 된다. 그리고 스프링캠프에서 박찬호로부터 투심을 전수받는다. 류현진은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한동안 투심 장착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정규시즌에서는 구사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정도로 완성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구종 추가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만약 성공한다면 투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류현진도 입단 직후 구대성으로부터 서클 체인지업을 전수받아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반면 자신의 투구밸런스를 잃어버리는 투수도 얼마든지 있다. 양현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커터를 배웠는데 이후 2년 연속 밸런스가 흐트러져 고전했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변형 패스트볼을 주로 구사하기 시작한 이후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줄어드는 현상은 자주 볼 수 있다.
류현진의 당면 과제는 지금 던지는 공을 갈고닦는 것이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정상급인 체인지업은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지만, 슬라이더·커브·패스트볼은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 류현진의 바깥쪽 공이 더욱 위력을 발휘하려면 우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지금보다 더 예리해져야 한다. 올해 류현진은 주로 슬라이더로 땅볼 유도를 했는데(슬라이더의 60.9%가 땅볼타구) 슬라이더와 움직임이 비슷한 변형속구를 개발하는 대신 지금 던지는 슬라이더의 움직임에 차이를 둬 구사하는 편이 전체 투구밸런스를 위해서라도 더 낫다.
커브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류현진 커브의 피안타율은 3할7리였다. 가장 큰 문제는 기복이었는데 스포티비 대니얼 김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커브는 잘 들어가는 날엔 움직임이 커쇼 못지 않았다. 하지만 안 들어가는 날과 기복이 너무 심했다. 커브는 감각의 영역이기에 많이 던지면서 기복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올 시즌 류현진은 커브가 위력적인 날 좋은 투구를 펼쳤는데 전문가들은 내년 시즌 커브만 보강하더라도 류현진이 올해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패스트볼은 실투를 줄여야 한다. 한가운데 들어가는 실투가 아니라, 포심을 던지려다 공이 풀려서 투심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문제다. 류현진은 투심을 안 던진다고 강조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올해 류현진은 투심을 22.3% 던졌다고 한다. 투수 이론에 정통한 롯데 김시진 감독은 "의도치 않은 투심은 위험할 수 있다. 방망이에 공이 빗맞으면 휘어져 나가면서 파울이 나오는 것처럼, 공을 제대로 채지 못하면 회전이 풀려 투심성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구위도 떨어질 뿐더러 실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올해 투심으로 기록된 투구의 피안타율은 무려 3할4푼5리였고 피홈런도 4개나 됐다.
만약 올해 류현진이 부진했다면 자구책으로 구종 개발을 검토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류현진은 자신이 가진 4가지 무기 만으로도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류현진은 아직 젊다. 구종 개발은 몇 년뒤 구위가 떨어질 때 고려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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