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LG 10년 숙원 이룬 ‘만점 캡틴’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3.11.05 06: 31

“캡틴 자리서 내려올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캡틴이 잘 이끌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하겠다.”
LG 이병규(9번·39)가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다. 이병규는 4일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통산 최고령 타격왕을 수상하며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주장 자리서 떠날 뜻을 전했다.
예정된 일이다. 이병규는 지난 2012년 1월 5일 열린 구단 시무식에서 LG 최초의 민선주장이 됐는데 애초에 주장 임기는 2년이었다. 당시 LG는 선수뿐이 아닌 프런트 직원까지 모두 투표에 참여, 이병규는 전체 투표의 과반수이상을 획득한 바 있다.

LG 구단 전체의 눈은 정확했다. LG는 작년부터 이병규를 중심으로 어느 때보다 단단한 결속력을 보였다. 그리고 올해에는 페넌트레이스를 2위로 마무리하며 10년 악몽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렇게 이병규는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이루고 유니폼에 붙은 ‘C'를 떼어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예상치 못한 벽에 마주하면서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잡고 변화시켜야 했다.
2012시즌만 하더라도 이병규는 카리스마를 앞세워 후배들을 이끌려고 했었다. 주장 임명 소감으로 “LG 트윈스를 놓고 모래알, 모래알 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단한 바위로 만들겠다”고 했고 어떻게든 이를 지켜낼 생각이었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 후배들에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끈기, 투혼 같은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LG 같다는 소리를 안 들을 것이다. 욕심 없고 나태한, 자신이 이미 1군 인줄 아는 선수가 있다면 팀에서 나가라.”
2012년 2월 22일 요미우리와 연습경기서 역전패한 후 이병규는 후배들을 불러 모아 이처럼 말했다. 이병규는 미팅을 연 이유에 대해 “경기 후반 역전 당하고 나서 아무것도 못하고 패했다. 안타를 치지 못한다면 커트라도 하거나 몸에 볼을 맞는 한이 있어도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며 “요미우리는 등번호 세 자릿수 선수들도 기를 쓰고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마치 이미 자신이 주전이 된 것처럼 경기했다. 주장으로서 이런 플레이는 즉시 바로 잡아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라운드 위에서 모범을 보여야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병규는 2012시즌 컨택에 중점을 둔 타격을 했다. 바로 전해에 16홈런을 기록했음에도 후배들에게 팀 배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2011시즌 3할3푼8리였던 타율이 2012시즌 3할을 턱걸이 하는 데에 그쳤다. 홈런은 5개로 급감했고 타점도 30개가 넘게 줄어들었다.
2013시즌 스프링캠프 당시 이병규는 2012시즌 자신의 모습을 두고 “초반 잘나가다가 부상으로 15일 쉬고 왔을 때 좋았던 밸런스를 잃어버렸다. 러닝하면서 밸런스를 찾아야 하는데 장딴지 부상으로 러닝이 힘들었다”며 “사실 주장이 되면서 내 것을 많이 내려놓았다. 그래서 컨택 위주로 타격했다. 팀과 나를 동시에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우리 선수들을 잘 챙기려고 했는데 팀 성적도 안 나왔다. 일 년 지나고 보니까 내 실수란 것을 느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병규는 반성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 2013시즌을 앞두고 과감하게 컨셉을 바꿨다. 후배들이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선 자신부터 긍정적인 ‘착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2013년 2월 오키나와에서 이병규는 “10년 연속 포스트시즌도 못간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제발 10년에서 끝내고 싶다. 11년까지 이어지기는 싫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말하면 후배들이 부담을 더 느낀다.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며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포스트시즌) 갈 수 있다’, ‘4강 할 수 있다’고 외치라고 한다.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마인드를 바꾸려 노력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병규의 이러한 행동은 LG의 반전으로 이어졌다. LG는 올해 5월 중순을 기점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당연히 LG 돌풍의 중심에는 이병규가 있었다. 이병규는 2013시즌 10연타석 안타, 최고령 사이클링히트, 타격왕(3할4푼8리), 득점권 타율 전체 1위(4할2푼6리) 등 일년 동안 시계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착한 남자 컨셉도 제대로 먹혔다. 이병규는 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후배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앞장섰다. 이병규는 “언제나 후배들에게 ‘즐기자. 그라운드 위에서 야구하는 3시간만 즐기고 집에 가자’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7월 5일부터 7일 넥센과 목동 3연전을 모두 패하며 10연속 위닝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도 “첫 두 경기를 지고 나서 ‘세 번째 경기는 져도 된다.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소모 없이 잘 졌다. 그리고 다음 3연전을 싹쓸이했다. 3연패를 당한 게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거 같다. ‘우리도 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게 하는 한 편 ‘즐기자’는 초심을 되찾게 했다”고 3연패가 약이 됐다고 바라봤다. 
이병규로 인해 LG 선수들은 부담을 내려놓았고 기량 이상을 발휘했다. 위기가 찾아올 때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궁지에서 벗어났다. 결국 LG는 10월 5일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서 극적 드라마를 연출, 2위로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이후 LG는 아쉽게 플레이오프서 패배,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닿지 못했다. 그러나 이병규는 물론, LG 전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2013년이었다. 이병규는 주장 완장을 내려놓으면서도 “올 시즌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왔다. 좀 더 올라갔어야 했는데 선수들 힘이 거기까지였던 거 같다. 그래도 앞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제부터 나는 물론, 우리 선수들 모두 더 열심히 할 것이다”고 더 밝은 LG의 미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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