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이창동·봉준호가 배우하면 이런 기분이겠죠" [인터뷰]
OSEN 박정선 기자
발행 2013.11.06 15: 02

이제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영화판 최고의 스타였던 박중훈은 이제 스크린 속이 아닌 바깥에서 영화를 만든다. 그의 첫 번째 영화 '톱스타'는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연예계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그린다. 
개봉일을 며칠 앞두고 만나 본 감독 박중훈은 조심스럽고 긴장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박중훈 특유의 입담은 살아있었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때로는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말을 아끼기도 했다. 28년 동안 영화판을 누벼왔던 박중훈은 "제가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런데 초조함을 감출 길이 없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이제 정말 ‘배우가 아닌 신인 감독 박중훈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일단 박중훈의 인상부터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화려한 의상 대신 깔끔하고 차분한 옷을 입었다. 슬림했던 몸매도 일반적인 중년 남성들처럼 다소 통통해졌다. 배우시절 가져야 했던 외양에 대한 부담감은 덜어놓은 듯 보였다.

“감독한다고 하면서부터 7kg이 쪘어요. 촬영하면서 운동할 시간도 없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면서 술도 마시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외모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사실 감독이 평소 스타일을 바꿔 가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인터뷰 나오면서도 스타일리스트들이 화려한 색상을입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그게 오히려 편하더군요.”
 
사실 ‘톱스타’는 고난 끝에 만들어진 영화다. 캐스팅에서부터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특히 박중훈은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참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가 제작자이고 감독이니까 입장이 달라요. 단단히 마음먹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매번 의뢰만 받다가 의뢰를 해야하는 게 낯설었고요. 거절 받았을 때 충격이 심했어요. 객관적인 모욕감과 부끄럼, 자존심 상함 같은 것들이요. 처음에 20대 남자배우를 주인공으로 섭외하려고 몇 명 접촉했죠. 저보다 20년 넘게 후배들인데도, 겨우 매니저들과만 통화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만남 자체가 봉쇄당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톱스타’는 박중훈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연예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거친 암투와 음모들이 주 내용이다.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한 박중훈의 말에 의하면 ‘톱스타’는 리얼한 영화다.
“장르가 드라마인데 느와르처럼 찍고 싶었어요. 연예계는 소위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큰 곳이거든요. 그 욕망에 부딪히면서 치열한 다툼이 있는 곳이죠. 저는 연예계가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고 봐요. 겉으로는 다들 매너가 좋지만 안으로는 야성을 숨기고 있어요. 축구가 야만인데 신사적이잖아요. 그런 느와르 같은 세계를 그리고 싶었어요.”
 
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감독 박중훈에게 덧 씌여진 장신구다. 화려하지만 그만큼 무겁고 불편하다. 이 장신구로 인해 보는 이들의 눈빛도 달라진다.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 영화를 볼 때 감독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감독의 이미지가 겹쳐지지 않았다면 관객이 편하게 봤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오버랩 될 수밖에 없잖아요. 드라마 자체도 ‘이게 박중훈 이야기인가’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지죠.”
배우 박중훈은 28년 경력의 배우이지만, 감독 박중훈은 겸손한 신인 감독이었다. 그는 “세상에 경험만큼 소중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욕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었다.
“어제도 감독 한 명을 만났어요. ‘영화 기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부끄럽다’고 대답했죠. 사실 영화계 전체로 치면 한참 후배인데, 감독으로서는 제가 후배잖아요. 아마 이창동, 봉준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배우로 데뷔했을 때 30대 초중반 배우들을 만나면 그런 기분 아닐까요. 부끄럽죠,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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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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