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녀석 선수되려면 아직 멀었어...”
지난 9월 비시즌 연습경기가 한창인 용인 마북리 KCC연습구장을 찾았다. 198cm의 장민국(24)이 외국선수를 앞에 두고 3점슛을 펑펑 터트렸다. 유난히 몸놀림이 가벼워보였다. 하지만 허재 감독은 “장민국이 빨리 안 뛰어?”라고 소리치며 코트를 쩌렁쩌렁 울렸다.
경기가 끝나고 “장민국 참 좋아졌던데요?”라고 한마디 던지자 “선수되려면 아직 멀었어. 더 잡아 돌려야지”라며 껄껄 웃는 허 감독이었다. ‘지금도 잘하지만 내 성에 차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농구대통령의 기준에서 ‘선수’란 자신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올 시즌이 개막한 후 비로소 장민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선수’가 됐다.

장민국의 농구인생은 참 파란만장하다. 우리나라 배구의 최고스타 장윤창의 아들이 농구공을 잡았다는 사실부터 아이러니다. 차범근 아들 차두리가 배구를 하고 허재 아들 허웅이 축구를 하는 셈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장민국이 운동을 하는 한 항상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다녔을 것이다.
6일 동부전 15점을 올리며 장민국은 승리의 주역이 됐다. 외국선수 앞에서 슬램덩크를 터트리며 펄펄 날았다. 수훈선수로 뽑힌 장민국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아버지가 장윤창이란) 부담감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있었다. 계속 반복되니까 (부담감이) 나중에 서서히 없어졌다. 아버지가 농구에 대한 기술적인 것보다 경기 후 성실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라고 하신다. 체력이 떨어지니까 잘 먹고 관리를 잘하라고 하신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허재 감독은 “종목은 다르지만 장윤창 선배와 태릉에서 항상 보던 사이다. 민국이가 경기하면 항상 조용히 보러왔다 가신다”고 말했다. 본인의 두 아들도 운동을 하고 있는 터라 허 감독은 장윤창-민국 부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장민국은 연세대시절에도 장신이면서 유연성이 좋은 선수였다. 이와 동시에 항상 부상을 달고 다녀 제대로 가능성을 보인 적이 없는 선수였다. 장민국은 2012년 2월 드래프트 1라운드 10순위로 KCC의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발바닥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았고 데뷔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2군을 전전하며 이대로 사라지나 싶었다. 하지만 농구대통령의 눈에 아직 그는 끝난 선수가 아니었다.
“민국이가 작년 중국전지훈련에서 실력이 참 많이 늘었다. 그런데 발을 다치는 바람에 지난 시즌 써보지도 못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허 감독의 한마디였다. 아쉬운 만큼 조련은 더 혹독했다. 눈물이 쏙 빠지게 면전에서 모욕을 줬다. 장민국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도 갑자기 형을 잃은 장민국의 비보에는 마음이 여려졌다. “도저히 민국이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 얼마나 불쌍하던지...”

이제 장민국은 KCC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전력이 됐다. 198cm로 신장이 좋은데다 내외곽에서 모두 득점이 가능하다. 버티는 힘이 좋아 파워포워드 수비까지 가능하다. 장민국이 가세한 KCC는 1~5번이 모두 장거리 슈팅이 가능하고 달릴 수 있는 공격형 팀으로 거듭났다. 장민국은 최근 4경기서 13.8점, 3.5리바운드, 3점슛 44.4%를 기록 중이다. KCC는 4연승을 달리고 있다.
허재 감독은 “장민국이 3번을 보기엔 느리지만 4번으로 쓰면 신장이 있어서 버틸 줄 안다”고 높이 평가했다. 오히려 상대편 4번들이 장민국의 3점슛을 막느라 애를 먹고 있다. 장민국이 빅맨을 외곽으로 끌어내면 빈 공간을 강병현과 김민구가 파고든다. 허 감독은 장민국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주고 있다. 장민국은 NBA의 라이언 앤더슨(25, 뉴올리언스)이나 채닝 프라이(30, 피닉스)처럼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외곽형 빅맨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요즘 프로농구판에서 장민국처럼 제대로 운동하는 선수가 별로 없다. 억대 연봉을 받는 순간 몸을 사리며 게으른 선수로 전락하다 도태되는 이들이 태반이다. 장민국은 도저히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장민국은 16일 동부을 승리로 이끈 뒤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재활했다. 연습게임에서 루즈볼에 달려들고 하니까 감독님이 기용해주신 것 같다"며 "형 생각이 많이 난다.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형이다. 지금 없어서 힘들지만 형 몫까지 잘하고 있으니까 하늘에서 걱정하지마. 잘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민국의 잔잔한 스토리는 허재 감독은 물론 농구팬들의 가슴까지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