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정이가 벌써 어시스트를 5000개나 했어요?”
문경은(42) SK 감독이 화들짝 놀랐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후배가 어느덧 자신처럼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SK는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13-2014 시즌 KB국민카드 프로농구 2라운드에서 안양 KGC인삼공사를 64-59로 눌렀다.
오랜만에 친정팀을 상대한 주희정(36)은 4쿼터 중반 최부경에게 어시스트 한 개를 배달했다. 승패에 영향을 준 결정적 플레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농구 역사에는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 최초로 정규시즌 개인통산 5000어시스트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 주희정은 5000어시스트에 대해 “난 상당히 운이 좋았다. 얼리로 프로에 일찍 와서 군대도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후배들이 내 기록을) 깰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아직 내게는 남은 경기도 있다”며 웃었다. 현역선수 중 어시스트 2위는 3175개의 김승현, 3위는 2122의 임재현이다. 4위 양동근은 1913개로 2000개도 돌파하지 못했다. 이들도 노장소리를 듣는 베테랑이지만 주희정과의 격차는 소위 ‘넘사벽’이다.
문경은 감독도 깜짝 놀랐다. “희정이가 벌써 5000개를 했어요?”라며 말문을 연 문 감독은 “내 3점슛 기록처럼 깨지기 힘든 기록”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은 사제지간이지만 문경은과 주희정은 지난 2001년 삼성에게 프로농구 첫 우승을 안긴 동료였다. 2001년 챔프전에서 주희정은 시리즈평균 11.8어시스트를 올리며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주희정이 뿌린 공을 받은 문 감독은 평균 18.2점, 3점슛 37.2%의 폭발력을 자랑했다. 문경은은 주희정의 성실함을 곁에서 두고 지켜봤다.
문경은 감독은 “본인이 나이도 있는데 지금까지 관리하면서 대기록을 쌓아왔다. 축하받을 일이다. 젊은 후배들이 보고 몸 관리를 잘하길 바란다. 이런 선수가 우리 팀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덕담을 건넸다.

주희정의 대단함이 돋보이는 기록은 사실 어시스트보다 3점슛이다. 주희정은 지난 2일 전자랜드전에서 3점슛 한 개를 림에 꽂았다. 이로써 주희정은 프로통산 정규시즌 1043개의 3점슛 성공으로 ‘피터팬’ 김병철 오리온스 코치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주희정보다 정규시즌에 3점슛을 많이 넣은 선수는 문경은(1669개)과 우지원(1116개) 단 두 명이다. 주희정은 내로라하는 슈터 조상현(5위, 1027개 성공), 양경민(6위, 1023개), 조성원(7위, 1002개)의 기록을 모두 뛰어 넘었다.
프로초창기 주희정은 소위 ‘슛 없는 선수’였다. 주희정이 외곽에서 공을 잡으면 수비수들이 대놓고 주희정을 버리고 다른 선수에게 도움수비를 갔다. 어차피 3점슛이 없기 때문이다. 1997-1998 데뷔시즌 주희정의 3점슛 성공률은 단 19%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희정은 이를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극복했다. 주희정의 17시즌 평균 3점슛은 35.1%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평균이상은 되는 슈팅능력이다.
주희정은 “예전에 강동희 선배와 이상민 선배가 날 마크하면 저만치 떨어져 있어서 속상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슛에 콤플렉스를 가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슈터들의 훈련방식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다. 경기할 때도 연습 때처럼 쏘다보니 슛도 잘 들어갔다”고 고백했다. ‘람보슈터’ 문경은 감독은 주희정이 3점슛으로 자신을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희정은 ‘운동중독’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특히 빅맨과 달리 움직임이 많은 가드포지션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다. 주희정은 “야구와 달리 농구는 많이 뛰는 운동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웨이트 강도를 높여야 젊은 선수들에게 처지지 않을 수 있다. 요즘에 오히려 젊을 때보다 웨이트를 더 많이 해서 힘들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주희정의 정신적 한계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다. 이제 주희정은 통산 8000득점(-54점, 5위), 통산 1400스틸(-11, 1위), 통산 3점슛 단독 3위(-1), 통산 최다 11회 트리플더블 (-3, 공동 2위) 등 줄줄이 대기록에 도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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