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의 블랙홀이 시작됐다.
9일 김수현 작가의 신작인 SBS 주말드라마 '세번 결혼하는 여자'가 첫 방송됐다. 직설적인 김 작가 특유의 화법은 여전했고, 재혼과 파혼을 담담하게 그려나가는 터치에는 힘이 넘쳤다. '막장'을 목표로 등장하는 억지스럽고 불편한 인간 관계 대신 자연스러운 '척'하며 살고 있는 현실성으로 공감 코드를 넣었다. 재혼과 결혼, 그 사이에 끼어있는 주변 인물들의 심리 등 소재는 자극적일 수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김 작가의 접근 방식은 현실적이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 첫 회는 재혼한 여자 오은수(이지아 분)와 결혼을 앞두고 파혼한 여자 박주하(서영희 분), 파혼과 재혼에 휘말린 여자 오현수(엄지원 분)까지 세 명의 여자가 중심이 됐다. 은수의 현 남편 김준구(하석진 분), 전 남편 정태원(송창의 분)과의 일상은 드라마의 출발점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귀신에 씌인듯 "도저히 (주하와 결혼을) 못하겠다"며 도망친 철부지 안광모(조한선 분)의 막무가내는 조미료가 됐다.

첫 회는 김 작가 특유의 필치로 채워졌다. 빠르게 주고받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쉴틈을 주지 않고 이어졌고, 자연히 집중도는 높아졌다. 미간을 찡그리게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종종 목격되는 이야기들을 다루며 공감대를 키웠다. 왜 은수가 자신의 아이를 돌보수 없는지에 대한 해명, 자매지만 불편한 감정이 있는 현수와 은수의 관계에 대한 설명 등이었다.
김 작가의 전공 분야는 가족 드라마다. 그동안 발표했던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인생은 아름다워' 등 대부분의 작품이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고, 바람잘날 없는 우리네의 이야기를 극화하며 인기를 모았다.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의 정서에는 반하는 내용이지만 동성애, 미혼모 등 민감한 소재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꺼리는 소재들로 브라운관을 채우는 자신감은 김 작가이기에 가능해 보였다. 실제 그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를 갈등의 소재로 삼았고,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서는 미혼모를 가져왔다.
전작인 '무자식 상팔자'의 경우는 김 작가의 가치를 한단계 높여준 작품이었다. 그는 시청률 불모지였던 종합편성채널에서 두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채널에 구애받지 않고 고정적인 시청층을 끌어모으는 작가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평범한 집안의 두 자매를 통해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담길 예정이다. 즉, 결혼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가족의 의미까지 되새겨 보는 드라마다.
결혼은 당사자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친인척이 개입하는 거대한 사건이다. 앞으로 은수는 한결같이 재혼에 대한 삶의 무게로 힘들어 할 것으로 보인다. 현수는 파혼하고 돌아와 책임을 지라는 광모와의 관계로 숨을 헐떡일 것이 분명하다. 즉, 관계를 놓고 벌일 가족들 간 신경전은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중요한 메시지가 될 예정. 이를 두고 김 작가가 어떤 흡입력 있는 스토리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지 기대를 모은다.
현재로서는 '김수현이 하면 다르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김 작가가 전작보다 얼마나 더 업그레이드 된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것이냐는 기대가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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