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색깔을 기대케 하는 배우가 있다.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가 있긴 한데, 아직 보여지지 않은 다른 면모가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을 자아낸다. 많은 이들이 영화 '써니'의 꽃미남 청년으로 그를 처음 봤지만 영화 '구타유발자들' 속 그의 모습에서 배우로서의 빛나는 가능성을 봤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그가 우수에 젖은 소년으로 돌아왔다. 한 마디로 묘하다. 물이 젖은 눈빛은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영화 '소녀'(7일 개봉)의 김시후다.
'소녀'는 강원도 산골의 호수를 무대로 음산하고 묘한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멜로를 다룬 '핏빛로맨스'로 사랑하면 할수록 가해자가 되는 소년과 피해자가 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김시후는 이 영화를 택한 이유에 대해 "묘한 미스터리와 슬픈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그리고 담겨 있는 메시지 상징적"이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비주얼 커플로 등장하는 꽃남꽃녀 김시후와 김윤혜를 두고 '최적의 캐스팅'이라고 부른다. "역할에 이미지가 잘 어울려서 보기 좋았다"라고 말하니 "역할 자체가 연기자로서 굉장히 욕심이 났다"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상업 영화 개봉작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딱히 이런 취향의 정적인 분위기 영화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좋아해요. 어떤 영화는 교훈을 주고 어떤 영화를 삶에 활력소가 되죠. '소녀' 같은 작품 역시 울림을 주고요."
영화는 수위 높은 소년-소녀의 사랑 표현으로도 호기심을 일으켰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소녀'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수위 자체를 거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종본에서는 좀 셌어요. 계속 수정하면서 예쁘게 갔고, 최종적으로 좋은 그림이 나온 것 같아요. (좀 더 수위 높은 베드신도 가능하겠어요?) 아니요. 정말 진한 베드신은 못 할 것 같아요. 그건 좀 나이를 먹고. 하하."
앞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이들이 '구타유발자들' 속 그의 모습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해 "연기 하면서도 제일 기억이 남는 작품"이라며 "당시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이었고, 시나리오 받았을 때 빠졌다"라고 회상했다. '소녀'의 최진성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 감독은 '구타유발자들'을 보며 김시후를 지켜봤고 선해 보이면서도 뭔가 어둠이 숨겨져 있는 윤수 캐릭터에 그를 대입시켰다.
'리틀 원빈'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다. 잘 생겼다, 귀엽다, 예쁘게 생겼다란 말은 귀가 물리도록 들었을 것 같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는 야외무대 인사에서 사회자가 기무라 타쿠야를 닮았다고 말해 굉장히 민망했더란다. 누군가와 닮았다는 말이 배우로서 신경이 쓰이기도 할 터. 하지만 그는 "원빈 선배와 비교해주시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광"이라며 닮았다는 말에 손사래쳤다. '예쁘게 생겼다'란 말에도 좀 어색해하는 듯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의리'란 말을 자주 썼다. 배우 김보성이 언뜻 생각났을 정도.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건 '의리'에요. 사실 주위 분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는 것도 이런 의리 부분이 크고요."

알고보니 격투기도 한 '상남자다'였다.
"액션 연기를 잘 해 보고 싶어요. 격투기를 해서 몸 쓰는 것에 좀 자신이 있거든요. 어렸을 때 몸이 너무 허약해서 툭 하면 입원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했죠. 격투기를 한 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아파 본 적이 없어요. 저도 그 쪽에 제가 재능이 있는 지 몰랐어요. 대회에 나가면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하하."
인생의 어려움을 모르고 곱게 곱게 자랐을 듯한 귀공자 느낌이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회사 문제로 힘들었던 2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는 그다. 그를 치유해준 것은 바로 '영화'였다. 6개월간 집에서 영화를 '미친듯이' 봤단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값진 시간이었어요. 2년만에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 기간 안에 회사에 대한 믿음도,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등 좀 슬픈 일들이 많았어요. 가족과 지인들이 많이 도와주려고 했는데 제가 거부했어요. 혼자 헤쳐나가고 싶었거든요. 이 일을 그만둘까란 생각도 했고, 나에 대해서도 스스로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집에서영화를 미친 듯이 봤는데, 그 영화들 속에 삶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세상이 있더라고요. 스스로 뭔가를 깨우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는 어두운 터널을 헤쳐나온 느낌이었다. "이제는 슬픈 일보다는 기쁜 일이 많아지고 얼굴도 더욱 밝아질 것 같아요.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 제 주위 제 곁에 있는 사람들, 가족들이 얼마나 힘이 되고 소중한 지 알게 됐고, 이 일을 하는 건 행복을 찾기 위한거란 사실도 깨달았죠. 제 주위에 힐링이 되는 좋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그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고 싶어요."

의리를 중요시하는 그는 하지만 취약점도 있다. '워낙' 여배우들이랑은 친해지지 못한단다. "오랜 기간 가까워지지 못해요 제가. 여성분들하곤요. 말 한마디 하는 게 조심스럽고 자꾸 그러다보니 다가가기 어렵더라고요. 오랫동안 촬영해도 그렇기에 자꾸 처음 보는 것 처럼 어색하고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어요. 형들이 편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김윤혜 특유의 친화력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럼 "사랑에도 어색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연애한 지 정말 오래됐지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있다"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17살 때 첫 사랑을 만났는데 아직도 (그녀를) 찾고 싶어요. 드라마처럼 뭔가 스쳐가는 인연이었는데 긴 시간을 거치며 연인이 됐던 거거든요. 나중에 다시 멋진 모습으로 찾아보고 싶네요."
'소녀'의 윤수처럼 사랑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바칠 수 있냐고도 물었다. '의리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죠. 윤수의 마지막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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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