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롤러코스터'(하정우 감독)에서 돋보인 배우 중 한 명은 한성천이다. M자 모양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한기범 기장은 이 영화의 독특 코믹한 성격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만든다.
"콘셉트를 잡을 때 기장이 세 보여야 하는데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초고도 비만으로 가려고도 했죠. 그러다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를 생각하기도 했고요. 우스갯 소리로 70대 할아버지 두 분이 비행기 조종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 캐릭터를 만드는 그 과정 안에서 많이 생각을 했죠. 중요한 것은 기장-부기장이 어설프면 안 된다는 거였죠"
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인 '롤러코스터'는 오랜 동료들끼리 함께 한 영화다. 한성천 외에도 중앙대학교 연극과 동문들은 김재화, 이지훈, 임현성과 하정우의 오랜 친구 강신철 등이 출연한다. 다들 오랜시간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진 동료들이다. 부기장 역을 열연한 임현성에 관한 한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하)정우랑 나랑 신입생 환영 공연을 함께 준비했어요. 정우가 한 눈에 찍은 애가 현성이었어요. 오리엔테이션 첫 날에 우리방에 재웠죠."

기장실 장면은 편집의 위험성(?)도 컸기에 항상 긴장해야 했다. 잘못하면 통편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내 장면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냥 기장실 장면 없이 가도 무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현성이랑 나랑은 걱정과 우려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정우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편하게 해. 안 쓰면 되니까' 이랬어요. 그런데 그게 진심이었다는거. 하하. 그래서 첫 테이크 찍을 때 현성이랑 저랑 둘 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현성이가 저보다 더 많이 긴장하하더라요.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나까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정신을 똑바로 차렸죠."
하정우가 이번 영화를 하면서 한성천에게 대본 100번 리딩을 시킨 사연은 유명하다. 사실 친구로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하지만 한성천은 배우로서 초심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며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붙었다. 처음에는 100번을 하려면 24시간을 해도 모자랐는데 점점 속도 붙다보니 최고 빠른 시간이 2분 40초였다. 입에 완전 붙게 연습을 했다"라고 자랑(?)하며 웃어보였다.

이 작품으로 연기자로서 초심을 찾았다는 그다. 그는 연기자로서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배우.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중대연극과로 배우 한 길을 걸은 그는 어디가나 연기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연극에서도 주인공을 많이 꿰찼다. 저절로 '내가 잘 하긴 하나보다'란 생각이 들어 자만심을 갖고 살아왔다는 그다.
하지만 그에게 결론적으로 득이 된 부침이 있었다. 영화 '577 프로젝트'를 할 즈음 한 동안 일이 안 풀릴 때가 있었다. 매니저가 도망가기도 했고, 캐스팅된 연극이 잘 안 되기도 했다.
"정우가 제게 처음 던진 말이 '너는 시나리오를 써 봐라'는 거였어요. 맷 데이먼도 자기가 직접 대본을 써서 주인공을 했듯이 연극 대본도 네가 쓰고 한 것이죠. 그런 것들로 인해 '우리끼리 해보자'란 생각을 공유하게 됐어요. 정우가 백상 시상식에서 어쩌다 공약을 해 국토대장정을 했지만 그것도 남겨보자,란 생각을 했어요. 의미있게요. 굳이 영화화하자 이런 게 아니라 '우리끼리 남겨보자'란 거요. 우리 이런 걸 추억해보자, 이런거. 그랬더니 제작 하는 사람들이 붙는 등 주위에서 흥미를 가지더라고요. 또 '577 프로젝트'를하면서 제 밑바닥에서의 절실함이 다른 사람에게 보였나봐요(이 작품에서 그를 눈여겨 본 관계자를 통해 새로운 회사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그 전에는 절실함이 없었거든요. 사실 그 전엔 연기에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 얘기하면 '뭐에 대한 절실함이지?'란 의문이 있었어요. 삶에 대한 절실함과 연기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죠. 자연스럽게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것에 절실함이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통해 이런 것을 완전히 깨 버렸습니다."
하정우의 독설도 약이 됐다. 언제나 동료 선후배들에게 주목받는 한성천이었지만 대중은 그를 잘 모르고, 그를 알리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연기는 내가 좀 한다'라는 그런 생각을 가졌었어요, 솔직히. 그런데 정우가 세게 말을 해 주면서 많은 약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뭔데?'라는 거죠. 내가 그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정작 내가 보여줘야 할 것이 필요했죠. 정우가 나를 잘 아니까 제일 아픈 부분을 건드리면서 얘기했거든요.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연기가 아니면 '내가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란 생각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더라는 그는 "그래도 잘하는 건 연기인데, 다시한 번 열심히 해보자란 마음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뭔가를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생각을 하니 또 창피하더라고요."
그는 하정우에 대해 상당히 고마워했다. 그 동안 하정우 본인이 스스로 겪었던 시행착오를 빨리 동료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모진 말을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것을 듣는 자신이 못 따라오면 속상함으로 독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정우 사단'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해 했다.
"테두리 안에 저희를 가둬놓고 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중대 것들'끼리 한다는 등의 시선이요. 남의 큰 돈을 들여 만들고 대중에게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 받는건데 친분으로 뭘 한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죠. 비지니스 세계에서요. 사실 '롤러코스터'에도 다른 쪽으로 오디션을 보고 오신 배우 분들이 많은데 오해하실까봐 걱정이죠. 결론적으로 다 저희가 잘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개개인이 아직 인지도가 낮고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런 시선을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저들끼리 또 뭉쳐서 과연 뭘 보여줄까?'란 기대감을 갖게 하고 싶어요. 영화 '오션스일레븐' 처럼요."
배우로서 앞으로 그를 지켜 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요청했다.
"'577 프로젝트'나 '롤러코스터'를 유심히 본 분들도 사실 절 잘 모르세요. 하지만 그런 점 또한 좋습니다. 앞으로 '쟤가 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란 호기심을 심어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더 노력할 거고 최선을 다 할 거에요. 제 매력이요? 이렇게 보는 거랑 저렇게 보는 거랑 다른 거? 하하. 스스로 제 한계를 그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TIP : 인터뷰 도중 "뭐에 화 나신 건 아니죠?"라고 물었다. 그러면 힘줬던 눈을 풀고 온 얼굴 근육을 풀며 환하게 웃는다. 사람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눈빛은 순박한 눈망울로 변한다. 이런 점이 매력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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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