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주축 선수들이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나왔다. 괜찮은 야수 유망주들을 대거 보유한 상태에서 두 번째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음은 물론 두꺼운 야수층에 반드시 외국인 타자 한 명을 넣어야 한다. 자칫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두산 베어스의 2013년 세밑은 생각보다 스산하다.
두산은 올 시즌 막판 상위권 경쟁을 펼치다 71승3무54패로 페넌트레이스 4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다. 그러나 넥센을 준플레이오프서 3승2패, LG를 플레이오프서 3승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뒤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으나 7차전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시리즈를 펼쳤다. 두산의 2013년은 롤러코스터 같았으나 막판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 속에서도 투혼을 펼치며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노력이 값졌던 한 해. 그러나 시즌 후 두산의 속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오랫동안 팀의 센터 라인을 지켰던 중견수 이종욱, 유격수 손시헌이 FA 시장에 나왔으며 한때 팀의 클린업 트리오로 타선을 지키던 우타 거포 최준석도 FA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팀에 공헌한 바가 큰 선수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타 구단의 레이더망도 맹렬히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팀은 두꺼운 야수층을 갖추고 있어 냉정한 시각으로 봤을 때 세 명이 모두 팀을 떠나더라도 다른 팀에 비해 그 대안은 확실히 갖추고 있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한 전열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종욱의 빈 자리는 정수빈, 손시헌의 공백은 김재호, 최준석의 공백은 오재일이나 반드시 가세해야 할 1명의 외국인 타자가 메울 수 있다. 주력 선수들임에도 두산이 최악의 경우에 대해 물리적으로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팬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종욱-손시헌-최준석은 그동안 몇 년에 걸쳐 두산에 공헌한 바가 크고 특히 손시헌의 경우는 2003년 입단 이래 쭉 두산에서만 뛰어온 프랜차이즈 선수. 만약 이들을 모두 놓친다면 팬들의 비난 공세는 피할 수 없다. 두산이 집토끼 붙잡기에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11년 11월 이후 2년 만에 시행되는 2차 드래프트. 두산은 이 부분에 대해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보호 선수 40인 안에 팀이 지켜야 할 선수는 모두 넣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2년 전 전례를 생각해보면 그저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당시 두산은 실체를 1군에 드러내지 못한 투수 유망주를 지키려다가 김성배(롯데), 이재학(NC)을 포함시키지 못했고 이들은 새 소속팀의 주력 투수가 되었다. 김성배는 2년 간 롯데 필승 계투로 활약했고 이재학은 올 시즌 NC 에이스로 활약하며 신인왕좌에 올랐다.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방출된 박정배는 SK의 필승 셋업맨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야수층이 두껍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던 두산이지만 2군의 속내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2군의 투수 유망주들은 많지만 1군에 오를 만큼 구위-제구에서 균등한 기량을 갖지 못한 선수들이 많은 반면 퓨처스팀 야수 팜에 의외로 센터라인 내야수가 굉장히 적다. 대신 타격, 특히 장타 쪽으로 특화된 선수들은 퓨처스 팜에서도 편중되어 있다. 2년 전 2차 드래프트에서 의외의 투수들을 타 팀이 찾았다면 이번에는 일발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이 타 팀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다음 시즌 가장 피해가 커질 부분은 바로 '반드시' 외국인 타자 한 명을 가세시켜야 한다는 점. 올 시즌 두산은 팀 타율 1위(2할8푼9리), 팀 도루 1위(172개), 장타율 1위(4할2푼), 출루율 1위(3할7푼)를 기록했으나 공격 부문에서 타이틀 홀더는 없었다. 어느 한 명이 독불장군으로 잘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고르게 힘을 보태고 팀에 공헌했다. 1군 선수층에서도 특별히 빠지는 부분은 없다. 수비 면에서는 완비되어 있으며 1루-지명타자 쪽은 오히려 선수가 포화상태다.
그 가운데 규정 때문에 반드시 타자를 1군 라인업에 넣어야 한다는 점. 1군 야수층이 두꺼운 두산에게 이 부분은 좋을 것이 별로 없다. 이미 두산은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초기 거포 타이론 우즈로 대히트를 쳤으나 그 그림자 속 김종석, 추성건, 강혁, 문희성 등 국내 중장거리 타자들이 가려져야했던 과거를 겪었다. 야구 게임처럼 선수들을 마음대로 멀티 포지션 운용할 수 없음을 감안했을 때 현재 두산의 라인업에 반드시 외국인 타자를 끼워 넣는다면 어느 포지션에서든 피해 직격 선수 아니면 연쇄 피해자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센터라인 혹은 3루 커버가 가능한 외국인 타자를 찾는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1루를 제외한 내야수로서 성공한 외국인 타자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외국인 선수제 도입 원년인 1998년 현대에서 뛰던 스코트 쿨바, 2000년대 초반 현대에서 뛰던 톰 퀸란 정도가 성공한 외국인 3루수. 키스톤 콤비 쪽으로 눈을 돌리면 2000년대 초반 틸슨 브리또(SK-삼성)가 거의 유일한 성공 케이스다.
2008년 KIA에서 뛰었던 내야수 윌슨 발데스는 시즌 전 2루수-유격수 커버가 가능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정작 개막 후에는 공수 양면에서 모두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중도퇴출되었다. 이미 두산의 국내 야수층이 좋은 상황에서 상상 이상의 사치가 될 수 있다. 만약 내야수를 찾고 그가 성공적으로 한국 무대에 정착한다고 해도 이원석, 최주환, 허경민 등의 출장 기회가 급격히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투타 겸업을 하는 좌투 외국인 타자라면 모를까 어디로 가도 두산에게는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실패했으나 선수단의 분전 덕택에 성공한 2013시즌을 보낸 두산. 그러나 3명의 좋은 FA 선수들, 의외의 쥐구멍이 될 수 있는 2차 드래프트,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외국인 타자 가세는 스토브리그 두산을 고민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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