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허리케인' 손정오(32)가 프로복싱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 세계타이틀매치에 도전자로 나선다. 세계챔피언인 가메다 고키(27, 일본)를 맞아 오는 19일 밤 10시 제주그랜드호텔 특설링에서 세계타이틀에 도전한다.
결전을 앞둔 지난 11일 서울시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1층에서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손정오의 얼굴에는 긴장감 대신 여유가 넘쳤다.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입장이었지만 시종일관 자신감을 보였다.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김한상 매니저와 김광수 트레이너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2007년 생계 문제로 글러브를 벗었다가 2009년 다시 링에 오른 손정오는 "은퇴를 하고 체육관을 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힘든 훈련을 이겨낸다면 이런 기회도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길 자신도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라고 글러브를 다시 낀 이유를 밝혔다. 세계챔피언이 되겠다는 일념이 묻어났다.
손정오가 넘어서야 할 가메다는 통산 31승(17KO) 1패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20승(6KO) 4패 2무의 전적을 갖고 있는 손정오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유는 있다. 손정오가 당한 패와 무는 초창기 시절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등지에서 기록한 것이다. 최근 14경기에서는 13승(6KO) 1무, 무패를 기록했다. 가메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전적이다.
손정오는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싸우고 싶다. 링에 올라가면 두 얼굴의 사나이로 변해 눈빛이 달라진다. 어머니도 내가 링에 올라가면 살기가 돋는다고 말할 정도"라며 "가메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그것 때문에 성급하게 하는 면이 있다. 잘 이용하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손정오는 지난 2000년에 데뷔해 이듬해 신인왕을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다. '비운의 챔프' 최요삼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그는 "선배가 당시 세계챔피언이었는데 스파링 파트너도 챔피언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며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플라이급, 슈퍼플라이급, 밴텀급 등 세 체급에서 한국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누린 그는 현재 WBA 랭킹 14위로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정상권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다.
손정오를 키워낸 김한상 매니저는 "가메다는 손정오가 8년 전부터 연구했던 선수다. 많은 준비를 했다. 특히 왼손잡이인 가메다를 상대하기 위해 왼손잡이를 상대로 연습을 많이 했다"면서 "손정오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지옥훈련을 불만 없이 소화했을 정도로 독한 선수"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김광수 트레이너도 거들었다. "손정오를 4년 전에 만났다. 2달 정도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아직 세계챔피언이 안됐다는 게 의문스러웠다. 나도 세계챔피언 선수들을 키워냈었는데 그 선수들과 비교해도 정말 뛰어난 선수"라고 엄지를 들어올렸다. 그는 이어 "가메다는 아버지 보호 아래 키워진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선수다. 반면 손정오는 들에 핀 잡초처럼 끈질긴 선수다. 온실 속에 커온 선수들은 거칠게 자란 한국 선수들에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손정오는 원정, 큰 경기서도 멘탈이 강하다. 수백여 명 이상의 선수를 키웠지만 이렇게 지독하고 내공이 깊은 선수는 처음"이라며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한국 복싱은 지난 2006년 12월 지인진이 챔피언벨트를 반납한 이후 7년간 세계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했다. 한때 세계 복싱계를 호령했던 한국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가 이번 타이틀매치의 관심사다. 특히 WBA 밴텀급은 '4전 5기의 신화' 홍수환과 기술복싱의 달인 박찬영, 돌주먹 문성길에 이어 24년 만에 세계챔피언을 노리는 체급이다.
손정오는 "한국 복싱의 부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권투를 위한 싸움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싸운다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메다가 카운터 펀치를 잘 치는데 과연 그 주먹을 몇 개나 허용할지 기대가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침체된 한국 복싱의 부활을 알리는 새로운 기폭제가 될 이번 세계타이틀 매치는 채널A가 독점 생중계중계한다. 채널A는 19일 밤 9시 20분부터 50분까지 손정오와 가메다의 대조적인 권투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중계한다. 일본 TBS가 이번 경기를 동시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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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채널A 스포츠부 부장-김광수 트레이너-손정오-김한상 매니저 / 채널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