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일(76)은 최근 몇 년 사이 아내 엄앵란을 두고 바람을 핀다는 발언을 수차례 해서 대중의 공분을 샀다. 황혼 로맨스라고 치부하기에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불륜을 저질렀다는 고해성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바람에 ‘문제적 배우’로 찍히기도 했다. 그의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인생관, 삶의 방식과 달리 연기자로서의 신성일은 전설에 가깝다.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청춘 스타였던 그는 50여년간 540여 작품에 출연하며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그런 그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서 20대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시한부 인생을 연기했다. 까마득한 후배 배슬기와의 격정적인 감정 연기는 언제나 멋있는 남자 신성일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언제나 ‘젊은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다소 철없고 ‘젊은 오빠’ 신성일이어서 말이 되는 이야기가 됐다.
“젊었을 때는 작품이 많이 들어왔는데 1993년 이후로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야관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을 때 6개 정도의 작품이 있었어요. 그런데 모두 그냥 노인이었죠. 요양소에서 아들과 갈등을 벌이는 노인, 이런 역할들 뿐이었어요. ‘야관문’은 살기 위해 노력하는 노인의 이야기였고, 젊은 여자 배우와 함께 한다고 해서 출연을 결정했죠.”

영화는 실상과 달리 ‘야한 영화’로 홍보됐다. 50살 가까이 나이 차이나는 신성일과 배슬기의 조합은 온라인을 강타했다. 자극적인 현장 사진이 공개되며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영화판을 닳고 닳을 정도로 경험한 연륜이 있는 신성일은 이런 홍보를 이해한다고 했다.

“영화를 알리려면 그렇게 했어야 할 거예요. 우리 영화는 어떤 평론가의 말대로 격조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야한 영화로 홍보가 된 것은 속상하지 않아요. 요즘 같은 빠르고 정보가 많은 스마트폰 시대에 그렇게 홍보하지 않으면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신성일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이야기보다 동석한 배슬기를 배려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두 배우가 함께 취재진 앞에서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신성일은 행여나 자신에게 질문이 집중될까봐 걱정했다. 취재진에게 자신보다 배슬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라고 부추기고, 열심히 연기한 배슬기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말로는 젊은 여자 배우와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다소 주책 맞은 발언을 하는 할아버지였지만, 실상은 후배 배우를 아끼는 게 더 컸다.
“전 이번에 슬기와 연기를 하면서 연기자로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전 아이돌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나중에 자녀들에게 슬기가 아이돌 출신이어서 색안경을 끼는 대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죠. 슬기는 재능이 있는 배우고, 영화가 정말 잘 되길 바라는 친구예요. 슬기가 잘 되면, 함께 연기한 저도 자연스럽게 보이겠죠. 저보다 슬기가 돋보여야한다고 생각해요.”
신성일은 자신이 반세기 동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상대 배우와 감독에 대한 존중이라고 꼽았다. 1960년도에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영화 스태프로 3년 동안 고생을 한 것이 감독과 다른 배우들에 대한 배려심을 갖게 된 이유가 됐다.
“아무리 후배라고 해도, 상대 배우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감독이 해야죠. 현장에서 감독은 절대로 존중해야 해요. 감독 외의 사람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월권이죠. 배우는 하얀 캠퍼스예요. 감독은 캠퍼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고요. 화가의 개성에 따라 그림(작품)을 그리는 거죠. 어떤 배우는 현장에서 감독에게 입김을 넣고 자기가 감독을 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배우는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죠. 배우가 감독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작품은 망해요. 저는 철저하게 그 점을 지키고 있죠.”

담담하게 작품과 자신의 연기를 하던 신성일은 인터뷰 말미에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이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많이 긴장했단다. 50여년 경력의 배우가 긴장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20년 만에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맡았으니, 떨리기도 많이 떨렸다고.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많이 긴장했어요. 슬기가 많이 배려해준 덕분에 작품을 마칠 수 있었죠. 사실 극중 배역이 암 환자라고 하니 살도 많이 뺐어요. 80kg 가까운 근육질 몸매였는데 72.5kg까지 줄였어요. 운동을 하지 않고 근육을 뺐죠. 그리고 환자니깐 배는 두툼하게 나와야할 것 같아서 배는 내밀고 있었어요.
540여 작품에 출연한 신성일이었지만, 아직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공기 좋은 지방에서 생활하며 젊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언제나 아내 엄앵란과 티격태격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로서 각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함께 살면 오히려 서로에게 압박을 받으며 행복하지 않다는 게 지론이다.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바라는 게 있다면요. 제가 영화배우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점이에요. 슬기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젊음이 있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 몇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몇 작품을 더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로 존재감을 알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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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