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은 대표적인 효자종목이다. 그 동안 안한봉, 박장순, 심권호, 정지현 등 숱한 올림픽스타들을 배출해온 메달밭이다. 하지만 요즘 레슬링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련을 보내고 있다.
올림픽 퇴출위기에 놓였던 레슬링은 지난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서 열린 제125차 IOC총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다시 채택됐다. 이로써 레슬링은 지난 2월 12일 올림픽 핵심종목 25개에서 제외된 후 약 7개월 만에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복귀하게 됐다.
이와 맞물려 국내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3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남자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서 김현우(25, 삼성생명), 66kg급에서 류한수(26, 삼성생명)가 동반 금메달을 따낸 것. 1999년 김인섭(그레코로만형 58㎏급), 손상필(그레코로만형 69㎏급), 김우용(자유형 54㎏급)의 금메달 이후 무려 14년 만의 쾌거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지난 1982년부터 30여년 간 해마다 10억 원 가량을 후원해온 삼성이 동계종목 집중을 이유로 레슬링 후원중단을 결정했다. 현재 한국레슬링은 후원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금메달리스트 김현우와 류한수를 만났다.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두 선수는 지난 10월 전국체전에 출전해 또 하나의 금메달을 추가했다. 그야말로 쉴 틈이 없는 훈련의 연속이다.

김현우는 “세계 1인자인데 전국체전에서 지면 창피하잖아요. 하하. 더 이를 악물고 했죠”라며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류한수는 “다들 현우가 무서워서 기권 했어요. 현우가 결승전 한 경기만 뛰고 금메달을 땄다니까요”라면서 고자질했다. 두 선수는 친형제처럼 가까운 우애를 자랑했다.
레슬링은 훈련이 고되기로 유명하다. 국가대표들만 모이는 태릉선수촌에서도 최고의 훈련량을 자랑한다고. 김현우는 “태릉에서도 훈련은 우리가 톱이죠. 다른 선수들도 저희보고 불쌍하다고 합니다”라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간단히 몸만 푼다면서 50kg 역기를 번쩍 드는 선수들은 기자의 눈에 초인처럼 보였다.
세계 1인자들은 과연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구체적 연봉을 밝힐 수는 없다. 삼성생명 소속의 두 선수는 그래도 다른 지자체 소속 실업선수들보다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삼성트레이닝센터의 훈련시설도 국내최고를 자랑한다. 하지만 대우는 같은 곳에서 훈련하는 농구, 배구 등 프로선수들에 훨씬 못 미쳤다. 대중의 관심도 떨어진다. 세계최고의 기량을 갖추고도 열악한 관심 속에서 묵묵히 운동에 전념하는 그들이었다.
“운동은 항상 하던 일인데요 뭐. 오히려 텅 빈 관중석에서 경기하는 것이 힘들어요. 터키를 가니까 표를 사서 들어온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더라고요. 첫 판부터 터키선수랑 붙었는데 저희에게 야유를 퍼붓는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밝은 표정의 두 선수는 “레슬링협회에서도 레슬링 대중화를 위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보고 따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인기를 위해서라면 런닝맨에라도 나가고 싶어요. 김종국도 5분이면 제압할 걸요?”라면서 웃었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일주일 중 자유시간은 토요일 오후뿐이다. 1년 남짓 사귄 여자친구와의 짧은 데이트가 두 선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김현우·류한수는 “일단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선발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레슬링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며 팬들에게 당부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만 환호하는 것은 진정한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정말 춥고 배고픈 지금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한국레슬링이다. 레슬링협회 역시 후원사 유치와 레슬링 대중화를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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